
작품의 오락성과 완성도 여부 등을 떠나서, 올 여름 시즌 국내에서 제작된 화제작들에게는 긍정적인 시선과 함께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이랬었던 여름 시즌이 그동안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르와 소재에서 매우 다양한 도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괴수 영화와 재난 영화, 그리고 스포츠 영화 등이 대자본의 지원 아래 선을 보이고 있는 올 해 여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소재가 되어버린 저질 조폭물과 학원물, 멜로물
등에 지쳐버린 저로서는 이러한 모험들이 무척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대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만큼 결과가 좋지 않으면 물론 그 후폭풍 또한 무시할 수 없겠지만, 희생 없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디 민주주의만 피를 먹고 성장을 하겠습니까. 올 해 여름 시즌의 한국형 블럭버스터들을 보면서 저는 미래의 작은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보지 못 할 수도 있겠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알차고 화려한 국내의 영화 라인업을 극장가에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말입니다.
스포츠 그 중에서도 스키 점프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무려 110억원이 투입되었습니다. 이 정도 규모라면 한국형 블럭버스터라고 표현을 해야 할 텐데요. 대자본과 결합한 한국 영화의 희망과 한계를 모두 뚜렷이 보여주더군요.
할리우드 스포츠물의 경우 대부분 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종목이 소재로 채택됩니다. 야구라던가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농구 등이 그에 해당되는 스포츠 영화들이죠. 반면 한국은 비인기 종목만이 소재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핸드볼과 역도 등이 그랬었고요. 국가대표팀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스키 점프가 그렇습니다. 스포츠물의 전형적인 공식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때, 국내 영화계의 이러한 기획은 진부한 공식을 빠져나가 창의적인 연출을 보여주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입니다. 연민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켜 놓은 상태에서, 그것을 감동으로 바꿔보겠다는 것이죠. 이렇다보니 감동과 신파의 경계선에서 방향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할리우드 스포츠물과는 달리 멘토를 설정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요. 비인기 종목에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다 암울한 현실에 처해 있으며, 믿고 의지할 - 그들을 이끌어줄 - 대상 조차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을 하고 끝을 냅니다. 이 작품에서는 코치 캐릭터(성동일씨)가 삽입되어 있지만, 멘토라기 보다는 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감독의 의도가 애시당초 명확하게 이러한 밑그림에서 시작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함께 가지 말아야 할 신파까지 영화속으로 안들어 올 수가 없는 겁니다.
감동과 신파의 불가피한 공존 보다는, 감동이 덜 하더라도 신파를 들어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틀에 박힌 공식을 벗어나려고 하는 엔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들었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성장기를 통해서 눈물과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에서, 웃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유독 국내의 감독들은 '웃음'과 '눈물' 등 모든 정서를 스크린으로 끌어오려고 하는데, 웃음에 할애하는 시퀀스 대신 캐릭터들의 세밀한 묘사와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을 했으면 수작으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유머적인 코드를 삽입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완성도에 영향을 주면서까지 삽입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유머 때문에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필수적인 요소들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장치 조차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파와 유머를 잘 제어하며 절제된 연출로 감동과 드라마적인 완성도에 충실했다면, '이 작품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야 하는 수작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영화의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 이와 같은 '스포츠 코미디'에서 '스포츠 드라마'로 진화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연출의 중심이 옮겨질 수 있을 때, 관객들에게 두고 두고 회자되는 수작 또는 명작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그 한계 만큼이나 희망도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절반의 성공'은 뛰어넘은 영화로 귀결하고 싶네요.
주의 :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작비 중 대부분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보여지는 종반부의 올림픽 시퀀스에서 오락성 만큼은 확실하게 살려냈더군요. 그야말로 마치 내가 그 곳 관중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매우 생생하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줍니다. 예술 영화가 아닌 이상 한가지 요소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오락성이 우선시되어야 할 텐데요. 무너져버린 완성도 속에서도 오락성 하나 만큼은 잘 전달해주네요.
CG가 혼용되었을 올림픽 시퀀스는 앵글과 카메라의 동선, 그리고 CG의 퀄리티 등에서 입이 벌어지게 할 정도입니다. 중반부까지 실종된 개연성을 유머로 대체하며 내러티브를 이끌어 온 후, 종반부에서는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터뜨려 주니까요. 더불어 틀에 박힌 구성을 벗어나려고 했던 노력이 보였습니다. 내심 유심히 살펴본 것은 종반부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비주얼과 동반된 감정을 어느 부분까지 끌고 가느냐였는데요. 동메달이 아닌 꼴찌로 - 실화를 각색했음을 감안하더라도 - 막을 내린 것이나, 주인공이 끝내 어머니와 조우하지 않고 떠나 보내는 구성 등은 김용화 감독에 대한 희망을 엿보게 합니다.
진화된 장르 즉 스포츠 드라마로 아직은 옮겨가지 못한, 한국형 스포츠 블럭버스터 영화의 과도기 상태가 바로 오늘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 현실을 감안할 때 - 관객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영화에 대한 현실적인 타협을 했을 때, 그래도 상영관을 나설 때는 오락성을 풍부히 살려낸 작품을 봤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다음 세대에서는 스포츠 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우리들이 흘리는 피는, 바로 관객으로서 지불한 영화 티켓이니까요. 갈증을 충분히 해소한 미래의 어느 날에는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는 희망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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