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태그 : 크리스찬베일
2009/08/13   퍼블릭 에너미 - 디지털 (Public Enemies)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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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 - 디지털 (Public Enemies)
마이클 만 감독, 1943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어느덧 67세군요. 이제는 그도 늙어가고 있고 그의 작품에 출연했었던 배우들의 얼굴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새겨지고 있지만, 이 노감독의 천부적인 연출 재능과 성향 만큼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하는 감독인데 대표작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1995년작 <히트>를 들 수 있겠습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역동적인 캐릭터를 보여줬었던 <라스트 모히칸>도 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아마 많은 분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작품들일 겁니다.

최근의 연출작 두 편도 모두 좋았습니다. 특히 2004년작 <콜래트럴>은 "왜 마이클 만인가"를 보여준 수작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이애미 바이스>도 꽤 인상적이였습니다. 화려한 플롯을 바탕으로 마이클 만 감독답게 리얼리티가 넘치는 - 그의 전매특허인 총격 씬이 포함된 - 액션 시퀀스도 마음에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이제는 지나간 젊은 시절의 한 때를 스케치해 나가며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려 나가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콜린 파렐과 공 리의 사랑이 바로 그것인데 감성은 배제한 채 매우 담담하게 그려 나가는 것을 보며, 마이클 만처럼 좋았었던 시절이 완전히 흘러간 나이에 이르러서야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상영관을 나서며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이 양반, 이제 아름다웠었던 시절을 회상하는가 보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마이애미의 모습을 화려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위의 요소들과 함께 마초적인 성향의 연출을 변함없이 보여주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많이 흐르면 <마이애미 바이스>는 재평가를 받을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전작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고 있는 이유는 이 작품에서는 전혀 다른 사랑을 스케치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감성으로 가득한 애절하며 불 같은 사랑을 그리고 있더군요. 전작이 관조적으로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면, 이번 신작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화 인생을 이제는 되돌아 보며 정리를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그가, 스크린 속에 자신의 아름다웠었던 시간들을 이번 작품에서도 간접적으로 투영을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겁니다.

마이클 만 감독이 존 딜린저(조니 뎁)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기 보다는, 존 딜린저와 빌리(마리온 코티아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서 메가폰을 잡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 거죠. 물론 예전의 마이클 만이였다면 좀 더 장르적인 오락성과 완성도에 연출을 집중했겠지만요. 이제 그는 영화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를 해 볼 시점인 고희를 향해 걷고 있고, 그런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제게는 지금껏 그의 작품에서는 찾아보지 못했었던 이러한 정서들을 느끼게 됩니다. 마초적인 연출 성향을 가득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완성도와 오락성까지 모두 안겨주는 그 비범한 재능에 매료된 저였지만 최근의 작품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네요.
 

때문에 이 작품의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는 단 두 명, 조니 뎁과 마리온 코티아르입니다. 크리스찬 베일은 장르적인 매력을 살려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기 때문에 조연으로 머문 채, 매우 제한적인 역활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내러티브의 중심이 조니 뎁과 크리스찬 베일의 대결 구도로 가지 않는 것은, 마이클 만의 의중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였고요.

물론 크리스찬 베일의 캐릭터가 있음으로 해서 많은 관객들이 기대를 했을 액션 시퀀스와 장르적인 오락성이 완성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연기 잘 한다는 크리스찬 베일에게서 깊은 연기력을 느낄 수 있는 별 다른 묘사가 거의 없더군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리고 마이클 만과의 대화를 통해서 분명히 알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역을 허락한 것을 보면, 한편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마이클 만이 얼마나 매력적인 감독인지 알 수 있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반면 크리스찬 베일의 제한적인 역활과 희생을 바탕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두 명의 배우들에게는 출중한 연기력을 요구한 것 같으며, 그것을 스크린 위에서 실현해 냅니다. 조니 뎁의 경우 얼굴 전체가 스크린에 모자를 정도로 클로즈 업을 해서, 아무런 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서를 가득 표현해 내는 씬이 여러번 보이더군요. 마리온 코티아르 또한 자신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라는 것을 종반부에서 증명해 보이고요.

선(크리스찬 베일)과 악(조니 뎁)의 경계선이 모호한 가운데, 악의 캐릭터를 맡은 지오바니 리비시와 제이슨 클락 등의 연기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니 뎁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크리스찬 베일에게 말하는 "죽어가는 자의 눈동자를 봤는가"를 보여주는 레드역의 제이슨 클락은 짧은 분량 임에도 매우 임팩트가 컸습니다. 그 씬 만큼은 오히려 조니 뎁의 자책감이 섞인 안타까워 하는 표정을 압도할 정도였으니까요.

중간에 나가는 관객이 세 명 있던데요. 이 작품은 후반부부터 여러가지 정서들을 서서히, 그러나 매우 묵직하게 터뜨립니다. 마이클 만 감독을 이제는 장인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이 묵직한 감정들은 다른 범죄 드라마 영화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것들이였습니다. 그야말로 후반부에서 마이클 만 감독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더군요. 

그 밖에 교도소의 길게 늘어선 담벼락을 잡아내면서 그 위로 눈이 부실 만큼 파랗고 아름다운 하늘을 보여주는 앵글이 있던데요. 주인공 자신이 처한 현실과는 달리, 그가 꿈꾸는 로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앵글인 것 같아서 꽤 흥미로웠습니다. 조니 뎁과 마리온 코티아르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씬에서 보여지는 비가 내리는 배경은, 이들의 비극적인 미래를 표현해 낸 것 같았고요. 장면 하나 하나가 스타일리쉬 하면서도 모든 컷에 의미가 부여되어 있더군요.

쫓기던 중 차에서 내려 피투성이의 조니뎁이 로망을 이야기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리온 코티아르의 모습에서는 말로 표현 못할 애절함이 가득 묻어 나왔습니다. 그녀 또한 결말을 짐작하고 있지만 너무나 멀리까지 돌아왔기에, 이제는 그를 사랑하기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듯한 표정의 그녀를 보면서 비극적인 로맨틱함이 발산되더군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 백미를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남자의 눈물입니다. 운전대를 잡은 채 한없이 흘리는, 참으려고 안간 힘을 쓰면서도 주체없이 터져 나오던 남자의 눈물 말입니다. 분노와 자책감, 그리고 미안함이 모두 섞여있는 조니 뎁의 그 모습을 앞으로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이클 만 감독이 이제는 남자의 눈물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성 관객들을, 저를 열광시켜온 마이클 만이 말입니다. 그의 다음 작품이 매우 궁금해지며 기대가 됩니다. 관조하는 시선이, 그리고 그가 경험했을법한 낭만이 가득히 묻어나오는 영화를 이제는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트>가 그의 대표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말입니다.
by 배트맨 | 2009/08/13 22:33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6) | 덧글(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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