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명의 감독중 한명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을 더 좋아하지만, 봉준호 감독도 이른바 천재 연출가라고 할 수 있겠죠. 오락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완성도와 작품성 등 세가지 요소를 모두 보여주는 감독입니다. 더불어 언제나 그의 작품 속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화두도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이미 완성된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신작을 보면서 봉준호 감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위에서 이야기 한 세가지 요소 외에, 또 다른 특별한 재능을 눈에 두드러지게 표현해 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앵글입니다. 관람을 하면서 여러차례에 걸쳐서 매우 감탄을 했습니다. 이러한 표현력이 시각적인 임팩트를 안겨주는 구도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인 도구로도 이용되고 있더군요. 게다가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던지요.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재능을 모두 드러내는 동시에 상당히 스타일리쉬해졌습니다.
이러면 흠 잡을 곳이 하나도 없는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완벽한 범죄 드라마입니다. 그야말로 퍼펙트 합니다.
아직 이 작품을 안보셨다면 영화 음악도 유심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엔딩씬이 나올 때 흐르는 음악은 영상 만큼이나 아름답더군요. 애처로움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스탭롤이 올라갈 때 살펴보니 이병우씨가 OST에 참여를 했습니다. 국내의 영화 음악인들 중에서 이병우씨를 가장 좋아하는데 <장화, 홍련> 이후 최고의 OST를 뽑아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오프닝 씬과 엔딩 씬의 모습, 바로 어머니들의 운명이자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여도,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자신이 아닌 자식을 위해서라면 눈물을 참고 춤이라도 춰야 하는 모습 말입니다. 오프닝 씬을 보면 본인은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해낸 듯한 허허벌판에서, 견딜 수 없는 자책감과 분노가 밀려와도 자식만큼은 고독하지 않게, 그리고 죄를 덮어주려면 춤을 출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해가 뜨는 가운데 무리들 틈에 섞여서 춤을 추는 엔딩 씬의 모습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내키지 않더라도 타인들과 부대껴야 하는 일상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겠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태양이 떠 있고 자신과 자식 모두 그 햇살 아래에 있는데 말입니다. 버스의 창 밖을 바라보며 외면하듯이, 자식을 외면할 수는 없는 숙명을 갖고 있으니까요. 엔딩 씬에서의 아름답지만 서글퍼보이는 모습은 바로 어머니의 삶과도 같을 겁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봉준호 감독의 범상치 않은 재능이 드러나죠. 도준(원빈씨)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의 교차 편집은 여러가지를 동시에 표현해 냅니다. 자식이 안좋은 일을 당하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일 텐데요. 자신의 손가락이 깊게 베어져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자식 걱정에 자신의 몸이 상하게 된 것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모자가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했고요. 여기에 더불어 상영관 안에서 작은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연달아 계속 터져나올 정도로 긴장감을 잘 살려냅니다. 약초를 점점 짧게 자르는 모습에서요. 이처럼 하나의 시퀀스에서 여러가지를 표현해 내는 것을 보면, 봉준호 감독 이 양반은 정말 천재가 맞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준은 칠칠맞지 못하게 길거리에서 벽에 소변을 보고 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보약을 먹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못났어도 부모에게는 사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죠. 그런데 어머니는 보약을 먹이고 있는데, 아들의 소변은 반대 방향으로 한없이 흘러가는 앵글을 잡아내더군요. 어머니의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못난 아들입니다. 철 없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도준이 버스를 잡아타고 떠난 후,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여주던데요. 고독하며 씁쓸한 당신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의 뒤로 보이는 벽이 모두 칙칙한 회색으로 되어 있어서 그 심경을 색감으로도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와같이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해 내는 앵글은 애처로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아니 상당히 스타일리쉬합니다. 그래서 저는 봉준호 감독이 이미 완성된 감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성장을 하는 연출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의 모성애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을 하면서도, 자칫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관객이 흐름을 타지 못할까봐 중간 중간마다 여러가지 시퀀스를 삽입해 놓은 것도 잊지 않았네요.
자동차 충돌 씬이라던가, 범인으로 유추될 수 있는 캐릭터를 어김없이 복수 이상으로 설정한 것 등 말이죠.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무거운 드라마에 집중을 하면서도, 범죄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시퀀스들이 요소 요소에 잘 삽입되어 있습니다. 탄탄하게 진행이 되는 내러티브 속에서 관객과 밀고 당기는 수 싸움에도 큰 매력이 있었고요. 편집 또한 적재적소에 잘 짤라내고 붙여놓았습니다.
이러니 저는 이 작품이 퍼펙트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모성애를 소재로 삼고 있지 않았다면 드라마 만큼이나 미스테리 스릴러로서의 장르적인 쾌감도 만끽할 수 있었겠지만요. 그 부분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이 드러내고 싶어했던 드라마의 높은 완성도가 만족스러웠습니다. <살인의 추억>이 범죄 스릴러 장르를 노골적으로 표현해 낸 작품이라면, 이번 신작은 범죄를 소재로 했지만 드라마에 집중을 하는 작품이라고 해야겠죠.
탐욕스러운 변호사, 무능한 공권력, 방치되어 있는 할머니와 손녀, 사회적인 약자만 희생되는 모습 등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내는 사회 비판적인 요소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화두에 대한 응답은 관객이 아닌, 권력을 잡고 있는 기득권층이 해야 되겠지만요.
진구씨가 열연하는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었던 것이 유일한 단점으로 보이지만, 범죄 스릴러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감독이 감수하며 한 것 같네요. 드라마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러한 캐릭터의 일관성 부재가 전체적인 흐름을 막거나 한 것은 아니였으니까요. 무리한 선택은 아니였다고 봅니다. 이런 작품에 박수를 쳐주지 않으면 어떤 작품에 박수를 쳐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