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태그 : 웨스턴
2008/07/18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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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순수 제작비 170억원이라는 액수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자주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나름대로는 천문학적인 액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같은 자본이 영화라는 상품과 연결이 되려면, 무엇인가 확신을 주는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의 하나 실패라도 할 경우 흥행 참패라는 단어보다는, 대재앙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영화로만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작사와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말의 두려움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었던 확신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저는 김지운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성도를 보여주며 오락성까지 갖춘 작품들을 꾸준히 보여주었기 때문이였을테죠. 그는 자신의 철학 때문에 관객과의 소통을 무시하는 감독도 아니고, 완성도와 상업성을 잘 맞춰 나가는 재능이 탁월합니다.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는 강력한 힘도 그의 매력중 하나이지요. 또한 최근 그의 작품들은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에게 해석과 관련하여 다양한 화두를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가진 감독에게 이러한 배우들을 조합시켜 주었을때, 170억원을 베팅하는 것이 무모한 모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정우성의 연기력이 이러한 프로젝트에 포함될 수 있는 배우인가 하는 의문이 들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면 감독은 자신이 그려나가고 싶어했던 캐릭터에 최적화된 배우들을 배치한 셈입니다. 예고편부터 영화의 본편까지 이어지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라는 음악의 선곡도 탁월한 선택이였습니다.

그런데 133분이 모두 지나고 나면 이 작품이 김지운 감독의 재능을, 제작비와 비례하여 마음껏 드러낸 작품인가 하는 물음에는 다소 고개가 갸우뚱거려집니다. 이번만큼은 화끈한 팝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였을까요? 쏟아부은만큼 관객이 오락성을 체감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김지운 감독의 팬으로서, 이번 작품이 팝콘 영화로서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영화는 시작부터 엔딩까지 만주 벌판에 얽혀 있는 것은 달리고 또 달립니다. 기차들도 달리고, 말도 달리며, 사람들도 달립니다. 이와 같은 큰 그림은 잘 설정된 것 같습니다. 물욕에 사로잡힌 여러 인간 군상들이 오로지 재물만을 탐욕하며, 이것을 끊임없이 쫓는 것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프닝 크레딧 또한 이러한 점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상당히 잘 만들었더군요. 상영관 안에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놈과 이상한 놈이 다시 또 달리기 시작하는 엔딩씬 또한 이와같은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인간들의 이러한 어리석은 본능이 앞으로도 - 현재도 - 계속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막을 연상시키는 끝없이 펼쳐진 허허벌판인 만주라는 공간도, 이들이 쫓는 것은 결국 허상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놓고 보았을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할 시퀀스는 두개입니다. 전반부의 열차 시퀀스와, 종반부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시퀀스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전반부에서는 감독의 재능이 빛을 발하지만, 종반부에서는 그 비범함을 잃어버리는듯 하더군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스피커에서 불을 뿜듯 터져나오고, 피아의 구별없이 모든 군상들이 얽히면서 달리는 씬에서 가슴이 뛰는 카타르시스는 음악에서만 느껴질 뿐이였습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할 시점에서 느슨해지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국내 시사회를 가진 후 2분 정도 더 쳐냈다고 기사가 나오던데, 감독의 욕심이 영화의 박진감과 리듬을 오히려 끌어내리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송강호와 정우성이 누워서 나누는 대화도 그렇게까지 길게 가야 했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송강호가 보여주는 맛깔나는 대사중 상당 부분이 과연 대본에 있는 것인지, 애드립인지 의심이 갔기 때문이였습니다. 비록 황량한 벌판의 굶주린 늑대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소박하며 아름다운 내일을 꿈꾼다는 메시지 정도만 살려주었으면 어떠했을까 싶네요. 송강호가 보여주는 해학이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관객을 유쾌하게 만들어준 것은 맞지만, 이 작품은 웨스턴 액션 영화가 아니라 송강호의 코믹 원맨쇼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르와 흐름까지 끊어질 정도로 지나치면 모자른 것만 못하게 될때가 있으니까요.

캐릭터에 대한 묘사와 인과 관계가 전혀 안보이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나쁜 놈을 빼놓고는 거의 모든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관객이 알 수 있는 것이 없더군요. 쫓고 쫓기는 당위성은 볼 수 있지만, 어떻게 알고 서로 끝까지 함께 얽힐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개연성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170억이라는 재물이 감독의 욕심을 불러온 것이였을까요. 오락성을 잃지 않는 범위내에서 더 많이 편집하고, 완성도를 높였으면 이번 작품도 상당히 인상깊게 감상했을 것 같은데 상영관을 나서면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프닝 크레딧과 전반부의 열차 시퀀스를 보면서는 정말 많이 흥분했었거든요. '이 작품은 1억불짜리 영화다! 역시 김지운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장센을 보면 얼마나 디테일한 것 까지도 열정을 쏟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차기작도 이와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라면 이번 영화를 교훈으로 삼아서 재능을 잃지않는 연출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은 그럴만한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by 배트맨 | 2008/07/18 10:19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15) | 덧글(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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