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 최고의 작품은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끔찍했었기 때문에 굳이 두번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였지만,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가장 잘 살려낸 작품이였던 것 같습니다. 완성도 또한 매우 뛰어나서 'Two thumbs up'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수작이였습니다.
물론 <올드보이>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과 모든 역량이 드러난 작품은 아니였다고 생각을 해요.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되 대중적인 연출을 보여준, 일반적인 관객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작품이 아니였을까 싶지만요.
상영관으로 향하기 전에는 이번 신작이 <올드보이>에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프리뷰 포스트에서 적은 내용이지만, 이 천부적인 감독의 연출작 패턴을 보면 일정한 공식과 주기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을 알린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대중적인 성공'이라는 목표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본인의 취향과 스타일을 완전히 배제한 연출을 했었습니다. 이런 연출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아마 그가 파산하지 않는 이상, 이런 작품은 앞으로도 내놓지 않을 겁니다. 그 다음에 발표한 작품이 정말로 본인이 하고 싶어했던 스타일을 마음껏 드러낸 <복수는 나의 것>이였는데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었죠. 하지만 수작 소리를 들어야 마땅했던 이 작품의 실패가 그에게 대단한 영광을 안겨주는 계기가 됩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취향은 유지를 하되, 대중적인 연출까지 감안하여 만든 작품이 바로 <올드보이>였으니까요. 이 영악한 감독은 대중적인 타협점을 제시한 셈이고, 관객들은 열광하면서 그의 연출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큰 성공을 맛본 후 내놓은 작품이 <친절한 금자씨>였습니다. 대중적인 성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다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 같네요. 호불호가 나뉘게 되었고 저는 처음으로 그에게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발표작은 <올드보이>와 같은 작품이 나왔을법 했는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무덤을 스스로 파더군요. 이와같이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번에는 대중적인 덧칠을 한 작품이 나올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양반은 벼랑 끝으로 몰려야 대중적인 타협을 하거든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면서 성공을 못하면, 그 다음 작품은 성공을 염두에 둔 연출을 하기 때문에 이번 신작은 그가 좀 물러선 연출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네요.
서두에 적었듯이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서 박찬욱 감독의 강렬하며 천재적인 재능을 느꼈었는데요.
그 또한 이러한 작품을 다시 보여주고 싶어한 것 같습니다. 아니 아주 노골적으로 회귀를 했습니다. 어쩌면 벼랑 끝에 몰려도 앞으로는 계속 이러한 연출작들을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연출가로서 걷고 싶은 길이 바로 이러한 작품들일테니까요.
상영관을 나서면서 솔직히 머리가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작품에 목말라 하던 저였지만, 이제 앞으로 다시는 <올드보이> 같은 작품은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드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수작을 다시 만나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듭니다. 대중들은 이제 그를 점점 멀리하겠지만, 그의 팬들은 기대감을 더욱 갖게 되는 전환점이 바로 이번 작품 <박쥐>인 것 같네요. 물론 저는 그의 팬입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이 영악한 감독은 앵글을 잡아내는 것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줍니다. 김옥빈씨가 송강호씨의 정체를 알게 된 직후 나누는 대화씬에서, 거울을 활용하며 송강호씨의 자아를 두개로 보여주더군요. 물론 이러한 감각은 그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것에도 끊임없이 노골적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봐야했었던 장면들도 꽤 있었고요.
상영 시간 내내 이성과 사랑이 먼저냐, 아니면 인간의 숨겨진 본능적인 욕구가 우선이냐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보여주는데요. 식욕과 성욕 이 두가지 기본적인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김옥빈씨를 살리려 하면서도 그녀의 피를 정신없이 핥습니다. 욕정을 견딜 수 없어서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격정적인 섹스를 하는 와중에도 피를 빨아 먹습니다. 영화속에서 대표적으로 묘사되는 두가지의 본능은 이성과 사랑, 그리고 관습과 종교보다 우선됩니다.
하지만 엔딩씬을 보면 결국은 이성과 사랑이 진리라는 끝맺음을 맺더군요. 본능적인 욕구와 이성 사이에서 몸부림을 치던 신부가 선택하는 것은, 가장 이성적인 선택일 수 밖에 없는 유일한 길입니다. 신부와는 달리 아무런 자책감도 느끼지 않던, 본능만이 남아있던 그녀가 마지막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엔딩씬에서 보여주는 타들어가는 그녀가 신고 있던 신부의 구두. 신부에게서 처음으로 호감을 느끼게 되던 날의 그 감정을, 그것이 바로 사랑이였음을 그녀 또한 마지막 순간에는 깨달았던 것이였을테죠.
탐욕스러운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 그 어떤 뱀파이어물에서도 묘사하지 못한 하드코어한 그들의 모습, 그리고 치정극의 말로는 결국 파멸인 것을 끔찍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인간이였기에 이성과 사랑을 선택하는, 그리고 받아들이는 엔딩씬을 보며 잔잔한 여운이 밀려옵니다.
할리우드 영화 <블레이드>에서 태양이 보고 싶다며 일출 앞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엔딩과는 정서적인 무게가 다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인 것이겠죠. 이런 작품이 바로 박찬욱 감독의 뱀파이어물입니다. 아니 그만의 치정극입니다. 인간 군상의 내면과 욕망을 노골적으로 다루는 작품입니다. 맞아요.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