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셔터 아일랜드 - 디지털 (Shutter Island)
노년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걸작 또 한 편을 추가하네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미스테리 스릴러 작품입니다. 1942년생이니까 이 거장이 연출하는 작품을 상영관에서 즐길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의 작품들을 2차 판권 시장이 아닌, 극장에서 동시대에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축복이었다고 회상하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연출뿐만 아니라 촬영, 편집, 음향 효과, 음악, 배우, 미장센, 배치 등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모든 요소들이 마치 톱니바퀴가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완벽하게 진행이 됩니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끝난 후, 장르적인 오락성과 완성도에 깊이 취해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네요.

아직 3월이지만 올해 최고의 스릴러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울 수 밖에 없는 장르 영화의 걸작이자, 위대한 연출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당신은 정말 최고예요!"
 
마틴 스콜세지 이 양반, 고전물의 촬영 방식에 대한 오마쥬도 보여주더군요. 번개가 칠때 석고상이 번쩍거리는 클로즈업 화면을 볼 때는, 동심을 잃지 않은 천재 거장의 장난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가 유년시절 가슴 두근거리며 보던 장면들을, 오늘날 극장가를 찾는 세대들에게도 똑같이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겠죠.

이와 같은 단편적인 오마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고전적인 스타일로 회귀를 한듯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배우들과 비주얼, 그리고 규모 등에서 현대 영화의 장점들을 차용해오고 있지만, 바탕에는 클래식한 분위기가 가득 묻어나오는 것 같은 작품이네요. 오래 전 마틴 스콜세지를 매료시켰던 감독들이,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스릴러 작품을 연출했으면 이런 스타일로 완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클래식과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걸작입니다.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종반부의 엄청난 반전이 있기까지, 복선을 의미하는 여러 장치들이 삽입되어 있는데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138분을 완벽하게 장악한 채 편집과 배치 등을 워낙 잘 해놓았기에, '이상하다'라는 의문이 군데군데 들기는 했었지만 그 복선들을 앞서 파헤치며 미리 귀결점까지 가보는 것은 힘든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독이 의도한 그대로 관객의 시선이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동일하게 가도록 만들었더군요
. 멋진 배치와 연출이었어요. 이런 모든 요소들이 천재 거장의 재능이겠죠. 샤말란 감독이 한때 전 세계 극장가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매직 트릭(1)을 보는 것도 같았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 미치지 않았음에도 - 마지막 선택을 하는 테디의 모습에서는 연민이 느껴지더군요. "괴물로 평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선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그를 괴물로 만든 그 시대의 주류들은 잘 먹고 살았을 텐데 말입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지만 그가 전장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트라우마도 없었을 테고 알콜 중독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내가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을 테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겠죠.

아내가 세 자녀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그가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가 그와 아내를 그리고 가정을 그렇게 만들어버렸네요.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돌아봐도 테디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 하는 - 사람들이 아직 주변에 꽤 있을 겁니다. 괴물로 평생을 살며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를 안고 가야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누가 존 코리 박사(벤 킹슬리)와 척(마크 러팔로)이 되어서 그들의 영혼을 쓰다듬어 주려 하고 있을까요. 누가?


(1) 관객에게 A, B를 던져준 후 C를 예측하게 한다. 또 다시 A, B를 제시하면 관객은 C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것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A, B를 제시하고 관객은 C라고 생각할때, C가 아닌 D를 보여준다.
by 배트맨 | 2010/03/23 18:32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5) | 덧글(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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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0/03/23 18:52
케이프 피어는 원작만 못했다고 혹평을 많이 들었고-리 톰슨 감독의 원작의 두 주연 그레고리 펙과 로버트 미첨이 출연했었죠. 최근 스타스키와 허치에서 원조 주인공들이 나왔던 것처럼^^-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는 너무 욕설위주에 폭력적이다! 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초기작과 후기작에서는 괜찮은 작품이 많은 감독이죠. 컬러 오브 머느라든가 특히나 드 니로와 같이 작업한 뉴욕뉴욕, 성난 황소, 무엇보다 택시 드라이버 같은 걸작들은 대단하다고 할 밖엔요^^.

일단 영화 보러 가야 하는데...엥...
Commented by 배트맨 at 2010/03/24 00:12
저는 대체적으로 그의 작품들이 다 - 본 영화들은 - 좋았었지만, 초기작과 후기작에서 괜찮은 작품들이 많은 감독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후기작들로 좁혀놓고 봐도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까지 아주 저를 미치게 만든 감독이예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이젠 관록이 붙어서 연출의 기복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컬러 오브 머니>를 본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폴 뉴먼은 이제 고인이 되었으니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폴 뉴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에 대해서 아버지와도 대화를 잠시 나눴었거든요.

말씀하신 원작은 보지 못했는데 TV에서 고전 특집 같은 프로그램을 만약 방영한다면 꼭 챙겨보고 싶네요. 요즘은 그레고리 펙 등이 나오던, 흑백 TV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 옆에 앉아서 눈 크게 뜨고 보던 시절이요..

이번 신작 극장에서 꼭 챙겨보셨으면 합니다. 1950년대의 당시 사회상도 반영을 시키던데, 위장효과님께서는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아시니 저 보다도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주드 at 2010/03/24 10:00
저도 어제 이 작품 봤어요~머릿속에서 영화의 잔상들이 떠나질 않네요. 그런데 저는 '스릴러'라는 장르로서는 좀 별로였어요. 일찍 반전을 눈치챌만한 여지가 많았거든요. 반전으로 치면 좀 평범하기도 했고.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며 음악,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는 정말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었어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10/03/24 15:14
오랜만에 수작 또는 걸작이라고 부를만한 스릴러 작품을 본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종반부의 반전이 없었다고 해도 장르적인 매력을 가득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고요.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봤습니다. 앵글하며, 음악하며.. 정말 대단했어요.

복선은 이상하다 싶었는데 종반부에 이르러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더군요. 복선을 곰곰이 되돌아보며 생각하는 묘미도 있었고요. 마틴 스콜세지 만세~ ^^
Commented by 신어지 at 2010/03/24 20:52
아 저는 왜 이 영화가 영 시시하고 이래저래 마뜩찮기만 한 걸까요. 다른 분들 좋아하시는 거에 같이 하지 못해서 속이 좀 상하고 있습니다. ㅋ 전반부에 제시되는 2차 대전과 아우슈비츠의 트라우마가 반전 이후 개인적인 경험으로 봉인되어 버리는 느낌이었는데 배트맨님은 그 마저도 잘 간직하셨던 것 같네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10/03/25 15:06
저는 반전이 펼쳐지는 부분이 오기 전까지도 꽤 만족스럽게 보고 있었어요. 사실 오프닝 시퀀스부터 매료가 되기 시작했었거든요. 반전 부분을 모두 들어낸다고 하더라도, 현대적인 할리우드물에 좀 지쳐있었던 갈증을 풀어준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전쟁의 트라우마가 결국 가정 파탄의 트라우마로 연계가 된 것은 맞는데, 개인이 그리고 가정이 시대의 상황 때문에 어떻게 망가진 것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서 크게 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달 들어서 처음으로 신어지님과는 다르게 영화를 본 것 같네요.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삼연타석 홈런을 쳐서 최고의 달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예요..
Commented by 무비조이 at 2010/03/25 00:26
요즘 인터뷰 기사가 많이 늘어서 다른 분들에게 트래백을 제대로 쏘으지 못하고 있네요^^

영화 글 올리시고 꼭 트랙백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뷰는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배트맨 at 2010/03/25 15:11
요즘은 좀처럼 소통을 활발히 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제한적으로 댓글과 트랙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비조이님께는 왠만한 트랙백은 다 보내드린 것 같네요. ^^ (더욱 번창하시고요. 트랙백과 댓글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Eunhwak at 2010/03/25 12:16
스토리는 저랑 똑같이 이해하셨군요. 그런데 어떤분들은 그 반전을 한번 더 꼬아서 해석함으로써 다른 결론을 유추해내시던데, 그것도 상당히 그럴싸하더군요. ㅎ
Commented by 배트맨 at 2010/03/25 15:28
물론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고, 그 어떤 해석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겠지만요. 이 작품의 경우 영화 전반에 깔려 있었던 복선과, 엔딩 시퀀스를 봤을 때 마틴 스콜세지가 명확하게 설명을 해준 것이 아닐까 싶어요.

말씀하신 부분을 복기해보면.. 정상으로 돌아온 후 다시 "척"이라고 말하며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 직후에 나오는 대사가 "괴물로 평생을 살 것인가, 선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이거든요.

수술을 받음으로서 모든 기억을 지운 채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한 거라고 봤거든요. 지금은 정상이지만 결국 다시 반복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감독이 꽤 자세히 설명을 해 준거라고 봤습니다. 확대 해석이 등장할 만한 부분이 있었나 싶어요..
Commented by 먹보 at 2010/03/31 23:49
셔터 아일랜드 보고 왔습니다..반전이 놀라웠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반전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시기가 또 젊은 장병들의 희생이 생존자들에겐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게 되겠지요..자신의 의지와 상관이 있든, 없든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건 맞는 말입니다. 이 영화로 많은 걸 생각하게 됐네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10/04/11 01:52
반전이 펼쳐지는 플롯이 아니더라도 - 중반부까지도 - 꽤 흥미롭고 밀도 높게 스릴러가 펼쳐진 수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전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만족스럽게 상영관을 나설 수 있었을 거예요.

그 시대의 정치인들 때문에 무고한 소시민들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가진 채 파멸해가는 모습이 참 안타깝더군요. 물론 요즘 시대도 크게 다른 것은 없지만요. 댓글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bada at 2010/04/09 14:27
볼만하더군요...보고나서 든 생각이 호접몽이었네요.ㅋ
Commented by 배트맨 at 2010/04/11 02:03
이제 봄 시즌이 시작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최고의 스릴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감탄을 거듭하면서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

요즘 시간이 통 안 나서 지난 번에 트랙백을 보내주신 <인 디 에어>도 아직 못 읽어보고 있네요. bada님께 깊은 양해를 드립니다. 오늘 오랜만에 제 블로그에 들어와보고 있습니다. T.T
Commented by online forklift cour at 2010/12/16 04:10
고 하더라도, 현대적인 할리우드물에 좀 지쳐있었던 갈증을 풀어준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Commented by coding and billing at 2011/08/22 14:10
영화 글 올리시고 꼭 트랙백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ed by medical coding at 2011/08/29 07:25
어르신들이 '저런~ 저런~'하면서 혀를 차지만, 당사자들은 남들이 보든말든 애정표현을 하지요. 요새 남 의식 안하는 젊은 20대분들~~ 아직까지 동방예의지국 아니겠습니까? 너무 격한 애정표현은 단둘이 있는 장소에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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