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나는 비와 함께 간다 (I Come with the Rain)
대중 영화와 예술 영화의 조우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 중 하나입니다. 두 분야 모두 '영화'
라는 문화 예술의 범주 안에 속해있지만, '영화
'라는 단어에만 구속되어 있을 뿐 철학과 목적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두 분야의 관객층 또한 좀처럼 조우하게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인위적으로 - 의도적으로 - 이 경계선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술성보다는 상업적인 논리 앞에서 색깔을 잃어버린 영화제가 화려하게 꾸며나가는 허상과 마케팅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떠한 영화를 선택하는 주체가 관객이므로 가해자는 정의하기가 쉽지 않지만 피해자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상영관으로 향하면서 관람 분위기가 조금 우려스러웠던 이유이기도 했고요. 아니나 다를까 상영 도중 나가는 커플도 있었고, 제가 앉은 좌석의 양쪽 커플들은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쉴새없이 떠들더군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여기 저기서 비아냥 거리는 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올해 상영관에서 경험한 최악의 반응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글쎄요. 개막작으로는 매우 대중적인 작품을 내걸어서 관객들을 환호하게 했고, 바로 옆에서는 비대중적인 작품을 걸어놓은 채 화려한 레드 카펫을 통해서 관객들을 환호하게 합니다. 대중 영화와 예술 영화의 경계선을 지워버린 무대 앞에서 대중들이 열광하며 조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뿐만이 아니라 영화제에 대한 가치관과 시선 또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색깔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조우는 앞으로도 해마다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부와 명예를 모두 움켜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배우이기는 하지만 결국 감독이 그려나가고자 하는 그림의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봤을 때,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어느 것을 지향해야 하나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자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일부 영화인들, 관계자들이 원하는 지향점은 아니겠지만요.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타오(기무라 타쿠야)가 노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던데요. 무신론자인 저로서는 예수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가 아닌 하나의 신으로만 바라봤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주요 캐릭터인 클라인(조쉬 하트넷)과 수동포(이병헌씨)는 세속적인 인간이 될 테고요. 

클라인과 수동포의 내면은 그야말로 탄성이 나오게 할 정도로 깊이있게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타오인데 캐릭터의 정체성만 드러낼 뿐,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상징성과 개연성이 매끄럽지 못하더군요. 때문에 세 명의 캐릭터가 연계되어서 진행이 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캐릭터간의 연계성이 단절된 채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지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 명의 중심축 중 한 명이 무너지니 내러티브가 제대로 지탱이 될리가 없습니다.

'고통과 구원'이라는 플롯 아래에서 시타오가 예수로 설정되었다면, 그 상징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더군요.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을 볼 때 마다,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예수가 아닌 - 신이 아닌 - 사이비 교주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트란 안 홍 감독도 그 점을 경계했는지, 나오지 말아야 했을 노골적인 예수의 모습을 차용한듯한 씬도 보였고요. 시타오를 그려나갈 때 마다 연출의 창의성과 표현력, 그리고 소통의 한계를 드러내더군요. 거기에 더해 실종된 후 예수가 되어버린 시타오에 대한 개연성까지 사라져서 극에 몰입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클라인과 수동포의 캐릭터는 이런 난해한 소재를 매우 잘 살려내고 있었기 때문에, 트란 안 홍 감독이 시타오의 표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출의 공백기를 가지며 그 오랜 시간동안 고민한 결과가 이런 것이였다면, 트란 안 홍의 한계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트란 안 홍 감독의 재능이 그나마 드러나는 것은 클라인과 수동포를 통해서였는데요. 신의 용서를 거부하고 욕망과 집착의 대상인 릴리(트란 누 엔 케)를 끌어안는 포옹 씬에서 드러나는 수동포의 피 묻은 손이 꽤 인상적이였습니다. 고통을 벗어나려면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을 버려야 할 텐데, 그럴 생각이 없으니 손에는 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피를 묻힌 채 살아야 하겠죠. 그에게 달콤한 권력을 안겨주는 권총도 손에서 떠날 일이 없을 테고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은 채 자신을 계속 뒤쫓으며 괴롭혀왔던 경찰 멩지(여문락)와는 달리, 세속을 탐하며 피 묻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을 용서해주겠다는 말을 생애 처음 듣고는 눈물까지 흘리게 되는 수동포였지만요. 신의 가슴에 총을 여러차례 쐈는데도 후련하지가 않습니다. 망치로 죽을 때까지 부하를 내리쳤을 때의 그 후련함이 느껴지지를 않는 겁니다. 생애 처음 들은 말과 더불어, 세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스스로 측은해지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들판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습니다. 

클라인 또한 수동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수동포가 신 앞에서 내뱉은 말을, 그 또한 수동포 앞에서 똑같이 내뱉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가 본데, 나는 당신이 두렵지 않아."

여전히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 회장이 제시하는 돈 앞에서 손에 피를 묻히며 살아갈 뿐입니다. 결국에는 인과 관계가 얽혀있는 타인이 만들어낸 피를 묻히며 살아간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입니다. 신으로 그려지는 시타오가 절대적인 선이라면, 수동표는 절대적인 악이고, 클라인은 그 경계선에 걸터있는듯 보이지만요. 스스로 끊어낼 수도 있었던 인과 관계 안에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선택에 대한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끔찍한 트라우마와 함께 그 또한 영원히 손에서 피를 씻어낼 수 없게되겠죠.

인간의 삶에서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또는 인과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서 얻게 되는 고통은 인간 스스로 떨쳐버릴 수 없는 걸까요.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서 그 많은 신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고요.
by 배트맨 | 2009/10/22 17:26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2) | 덧글(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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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영화리뷰전문 무비조이 at 2009/10/22 19:45

제목 :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겉멋만 잔뜩 든 예술영화?
http://www.moviejoy.com/qnam/view.asp?db=qna&num=1342...more

Tracked from 엑스캔버스 블로그 at 2009/11/18 11:28

제목 : [영화 리뷰]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기대는 말고 ..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유행에 뒤쳐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마련입니다.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이와 비슷한데요. 다른 사람들은 미처 보지 못한 영화를 특수한 경로(예를 들면 시사회라든지 영화제 같은)로 봤을 때 사람들은 왠지 모를 우월감을 느낍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미 먼저 선점해서 봤던 영화들을 뒤늦게 보는 것(예를 들면 이미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를 뒤늦게 극장가서 본다든지 하는)은 왠지 자존심 상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저 같......more

Commented by Uglycat at 2009/10/22 17:38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2위에 오르긴 했습니다만 수익이 1위인 디스트릭트9의 1/3 수준밖에 안 됐더군요...
그나마 평도 혹평이 많아서 대폭 드랍이 거진 확정된 상황이고...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10/22 19:34
예상된 결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셋째주 프리뷰에서도 적었지만 트란 안 홍 감독이 대중적인 연출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대중들이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 열광하는 것을 보고 의아스럽기는 했었습니다. 선 개봉된 일본 시장에서 3백만불이라는 민망한 스코어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닐 테고요.

드랍율이 2주차에서는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독과 배우들 모두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작품도 아니고요.. 참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T.T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10/22 18:36
제 동생도 오직 이병헌씨 때문에 이 영화를 봤다 하더군요.

애초부터 재미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구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10/22 19:39
부산국제영화제를 보면 결국 영화에 열광을 한 것이냐, 아니면 배우들에 열광을 한 것이냐의 문제인데요. 전자가 아닌 후자인 것 같아서 유감스럽기는 합니다. 결국 영화의 키를 잡고 있는 절대적인 존재는 배우가 아닌, 감독인데 말입니다.

이병헌씨가 대중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것을 봤을 때, 팬들이 상영관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상업성을 고려해서 만든 작품은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SoyRina at 2009/10/22 19:02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비.함을 향한 예매전쟁은 결국 영화와 영화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소행이 아닌 스타에 목메는 일부... 뭐라 해야 할까 '불나방' 때문이었음이 이로써 증명 되고 있습니다.

기무라타쿠야가 예수로 나온다는걸 알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일껍니다. 대다수가 세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씬을 기대 했을 거예요 ... 세 주인공의 빛나는 마스크를 보기위해 영화제건 극장이건 찾았던 그 분들은 영화 관람후에 당연스레 비아냥 거릴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자신들이 기대했던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니까요..... -_ -....


전 써로게이트를 어제 관람했는데
메세지는 분명히 있으나 impact가 약한것 같습니다.

브루스 윌리스 오퐈~는... 늙어도 멋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스틸컷에서도 그랬고 영화 안에서도 그랬고... 전날밤 실컷 울고 잠든 후 아침에 일어나 얼린 숟가락 맛사지 하는듯... 웅캬캬 ..

나쁘지는 않았지만 sf에세이..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로봇을 연상케 한 작품이었네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10/22 21:27
물론 그곳에서 열광을 한 관객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요. 스타 배우들에 대한 허상과, 지적 허영심을 쫓는 대중들의 습성이 만들어낸 촌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식 개봉 후 이렇게 썰렁한 극장가를 보면서 '그 때 그 관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고요. 한마디로 트란 안 홍 감독은 대중들에게 안중에도 없었다는 이야기였죠.

이 작품에 관해서 말씀을 짧게 드려보면, 트란 안 홍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내러티브를 그려나간 것 같아요. 조쉬 하트넷과 이병헌씨의 캐릭터는 매우 깊게 잘 표현이 되었지만, 기무라 타쿠야의 캐릭터는 좀처럼 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있더군요. (설령 이 작품이 깐느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동의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트란 안 홍 감독의 한계를 본 것도 같습니다. 배우들은 준비가 되었는데, 감독이 완전히 작품을 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배우들 중에서 특히 엘리어스 코티스는 표정 하나 만으로도 여러가지 정서를 바로 바로 전달해주더군요. 엄청난 연기력이였습니다.)

<써로게이트>는 조나단 모스토우가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던가요. <T 3>로 악평을 들은 것이 못내 억울했는지, 이번 작품 또한 다소 심오한 주제를 선택한 것 같던데요. SoyRina님께서 나쁘지는 않았다고 말씀하시니 오히려 작품이 더 궁금해지네요. ^^;

하지만 저의 영화 스케쥴은 <굿모닝 프레지던트>와 더불어 셋째주에 개봉한 <알제리 전투>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T.T
Commented by SoyRina at 2009/10/23 10:39
별 10개 만점을 세분화 해보겠습니다

하하/하중/하상
중하/중중/중상
상하/상중/상상
최고

써로게이트는 중상 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물론~ 저만의 주관적인 평가 ^^ 분명히 메세지는 있는데 impact 가 약했어요...
뭔가 굉장~한 액션이나 기각적 효과를 기대하고 본다면 허술하다고 느낄수도 있을법한 ...

산업화를 좇고, 기계 문명에 물들여져 있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 진짜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그런 메세지를 건졌다는것이 좋았던것 같네요.

관람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어요.
심야로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발에서 푹 삭힌 청국장 냄새를 풍기는 뒷사람 때문에 !!!!!!!!!!!!!!!! (버럭) 결국엔 참지 못하고 아저씨 신발좀 신어요. 라고 내질러 버렸지만 -_ - ....
스토리 자체는 써로게이트가 너무 많이 나와서 ㅠㅠ 집중 하지 않으면 이 써로게이트가 누구꺼인지..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_-; 아이큐 60이하 관람금지..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10/23 18:04
저는 <나.비.함>을 볼 때 저질 관람객들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제가 앉은 좌석의 양쪽 커플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얼마나 떠들어대며 영화를 보던지요. 그 커플들은 어떤 연출을 기대하며 상영관을 찾았던 것이였을까요? T.T

SoyRina님의 댓글을 읽다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 십여년 전의 일입니다. 서울극장이던가 영화를 보러갔었는데, 상영 시간 내내 정말 고약한 발냄새가 나더군요. 알고봤더니 바로 뒷자리에 앉은 여성의 발에서 나는 냄새였어요. 저도 너무 화가 나서 신발 좀 신으라고 말하려다가, 옆의 남친에게 - 그녀가 - 너무 무안해할 것 같아서 모른척 했던 적이 있었네요. ^^;

요즘에는 핸드폰 액정 화면을 열어보는 짐승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생각 같아서는 뒤통수를 그냥 팍!! -_-a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은 <T 3> 뿐만이 아니라 그 전의 작품들도 저는 별 다른 인상을 못받았는데, 나중에 <써로게이트>는 좀 챙겨봐야겠네요. 아이큐는 간신히 턱걸이 할 것 같습니다. ^^;

포근한 주말 맞으시고요..
Commented by 미미씨 at 2009/10/25 18:19
이 영화도 봐줄라구요. 그래서 일단 나중에 자세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

아참, 배트맨님 저 마라톤 10킬로 완주했답니다. ㅎㅎㅎ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10/26 00:30
부산국제영화제 당시와는 달리, 정식 개봉 후 흥행이 매우 부진하기 때문에 좀 서두르셔야 하실 것 같습니다. 극장가에서 오래 걸려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볼 때도 상영관이 꽤 썰렁했었고요.

10km 완주를 해내셨군요. (브라보!) TV의 뉴스에서도 소식이 나왔던데, 미미씨님 생각이 순간 났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도전을 하셨네요. 진심으로 박수쳐드립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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