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와 장르에 상관없이 역시 영화를 지탱해나가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내러티브의 힘'입니다. SF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 요소를 매우 잘 살려내고 있는 작품이네요. 이런 장르에서 참 오랜만에 수작을 만나본 것 같습니다.이런 소재와 장르는 대부분 블럭버스터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쏟아부어서 화려한 비주얼이 전달하는 쾌감에 연출의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일반적이였습니다.
팝콘 영화의 틀 안에 영화를 가둬놓은 채 기획이 되고 연출이 되다보니, 내러티브가 실종된 채 완성도는 엉성해질 수 밖에 없었고요. 이런 치명적인 단점들을 대체하고자 선택되는 요소가 CG였습니다. 하지만 시각적인 즐거움이 결코 영화의 만족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 많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 이런 장르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불과 3천만$의 제작비로 만들어졌습니다. 저예산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CG가 아닌 내러티브에 있게 될 때, 얼마나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되고 큰 즐거움을 안겨주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내러티브가 살아움직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장르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심오한 주제를 파고드는 작품도 아닙니다. 심오한 주제는 잘 그려냈지만 평단의 호응만 얻은 채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은 사례, 또는 감독의 재능이 턱없이 부족해서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외면받은 사례 등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터 잭슨의 재능과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 저이지만, 이번 신작 만큼은 제작에 참여한 피터 잭슨의 의도와 기획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플롯 설정을 단순화시켜 놓음으로서 대중성을 끌어안으며, 장르적인 묘미를 아주 깊이 파고드는 작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전자에는 관객들이 열광할만 하고, 후자에는 평단들이 열광할만 합니다. 저 또한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SF 스릴러물이였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닐 블롬캠프 감독이 그야말로 충격적인 데뷔작을 보여주었는데, 앞으로도 주목해 볼 만한 감독인 것 같습니다. 그 밖에 감독과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배우들이였지만, 주인공역을 맡은 샬토 코플리(1)와 용병 대장역을 맡은 데이빗 제임스(2)의 연기력도 인상적이였고요.
'도대체 저런 제작비로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CG를 이용한 비주얼적인 임팩트와 배치도 잘 이뤄져있습니다. 아직 가을이지만 올해 최고의 SF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외계인의 디자인은 매우 흉측한 방향으로 설정되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외계인의 겉 모습보다 더욱 추악스러운 인간의 탐욕을 비판해나가는 메시지가 영화를 크게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반부에 외계인들의 습성을 보여주는 시퀀스들이 하나같이 다 동물만도 못한듯 묘사되며, 질서와 자율이 사라진 무법천지를 - 디스트릭트 9 - 보여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고요. 이런 외계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본질, 즉 이성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부류는 인간입니다. 이와같이 서로의 생김새 차이 만큼이나 매우 대조적인 종으로 그려지며 영화는 출발합니다.
또한 디스트릭트 9에 격리된 채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외계인들로 인해서,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크기의 비행선이 상징하는 그들의 문명 수준은 관객의 뇌리에서 성공적으로
지워집니다. 연출 뿐만이 아니라 기획까지 매우 치밀하게 잘 그려진 영화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아니 다루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이성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에는 멸시가 가득차 있으며, 애완용 동물에게나 주는 고양이용 사료캔을 조롱하며 던져줍니다. 동물처럼 대하는 것이 아닌, 동물만도 못하게 다루는 군상이 가득 그려집니다. 부화하는 외계인들을 불태우며 웃음을 띄우고, 반항하는 외계인들은 서슴없이 죽이는 모습에서 그 어떤 자책감이나 도덕성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종이 다른 그들을 상대로 장사는 물론이고, 매춘까지 시키는 군상들도 보이고요. 갱단의 두목을 통해서는 권력만을 탐하는 인간의 본성을 비판하며, 그 밑의 조직원들이 보여주는 모습에서는 황금만능주의를 풍자합니다. 넥타이를 맨 화이트칼라 계층이 근무하는 외계인 관리국 MNU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고요. 이런 것들을 묵인하고 있는 정부까지도 말입니다.
기득권층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언론을 악용할 때, 그리고 언론이 권력에 기대어 올바르지 못한 보도를 하게 될 때, 한 개인이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어떻게 파멸하게 되는지도 보여주더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몸서리를 치게 되었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말입니다.
이와같은 모든 영화속 모습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들 곁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네요. 심오한 주제의 영화로 가지 않고도 이처럼 관객에게 화두를 던져 놓음으로서, 팝콘 영화의 영역에서는 빠져나온듯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묘사를 하면서도 상영 시간 내내 오락성을 잃지 않고 스릴러와 서스펜스를 팽팽하게 잘 유지하고 있더군요. 오락성과 완성도 그리고 작품성까지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모든 면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한 수작입니다.

위의 사진 한 장,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 때 조롱하며 던져주던 고양이 사료캔조차 아쉬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탐욕과 오만에 빠진 채 칼자루를 휘두르던 비커스(샬토 코플리)가 인간이야말로 흉측하고 비이성적인 무리들이였으며, 외계인들도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처럼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똑같은 생명체라는 것을요.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인간이 가진 탐욕과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탐욕과 오만이 아닌, 가정과 사랑이라는 사실을요. 비커스가 그렇게 그리워하며 되찾고 싶어하던 것들 말입니다.
결국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길은 속죄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인간이 추구해야 - 지향해야 - 할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했고요. 속죄가 곧 구원이 되는 셈이고, 구원이 곧 속죄가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고물 철을 펴가며 만든 몰래 놓고 간 장미꽃이 아닌, 살아 숨쉬는 장미꽃을 아내에게 직접 건네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엔딩 씬에서 흐르는 자막으로 그와 같은 의문에 답을 던져줍니다.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지어진 디스트릭트 10, 인간의 탐욕과 오만은 끝이 없습니다. 제 2의 비커스가 수십, 수백명으로 계속 늘어날 뿐이겠지요. 그는 속죄받을 수 없는 겁니다. 외계인들이 아닌, 똑같은 종인 인간들 때문에 말입니다.
(1) 전반부에서는 나약함을, 후반부에서는 강인함을 보여주며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좋은 배우더군요. 앞으로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젊은 시절의 마이클 아이언사이드와 흡사한 용모여서, 악역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정이 갔습니다. 이 배우도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로 진출하게 될 것 같은데 악역 전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