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와 <국가대표> 리뷰 등을 통해서 여러 차례 적은 바 있지만 작품의 오락성과 완성도 여부 등을 떠나서, 올해 여름 시즌에 선을 보인 한국형 블럭버스터 작품들에게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주고 싶습니다. 괴수물, 스포츠물 그리고 재난 영화와 같은 매우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언제부터인가 국내의 주류 영화계는 장르에 상관없이 저질 조폭물과 학원물 등이 국가대표 소재가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이런 저질 작품들에 지쳐버린 저로서는 이와 같은 올해 여름의 도전과 모험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개봉을 앞두고 박중훈 씨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용기있는 시도를 했다는 것 만큼은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에 공감합니다. 분명히 용기있는 시도였고,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도전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관람하고 나니, 이러한 장르와 소재가 국내 영화계에서 시도되었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품의 완성도가 그야말로 참담할 정도더군요. CG의 완성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두와 같은 이유 때문에 왠만하면 관대한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려고 했었지만, 저는 이 작품에 도저히 손을 못 들어주겠습니다.
제작비가 130억원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국내 영화계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블럭버스터'라는 꼬리표가 붙을만한 어마 어마한 제작비입니다. 하지만 같은 장르와 소재의 할리우드산 블럭버스터처럼 신나게 갈아 엎어버리는 영화적인 쾌감을 보여주고자 했었다면 CG에 들어가는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120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의 대부분은 다른 요소들로 채워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영화를 보기 전부터 - 개봉이 되기 전부터 - 사실 이 요소들이 예상이 되었습니다.
감독이 의도했었던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종반부에서 드러나게 되는데요. 그것이 CG로 보여지는 비주얼은 결코 아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비규환이 펼쳐지는 해운대에서 볼 수 있는 군상들을 통해서 깊은 정서를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의도였다면 중반부까지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탄탄한 드라마가 되어야 했을 텐데, 역시 예상대로 드라마는 엉망으로 엉켜버린 채 실종되었고 대신 코미디가 듬성 듬성 그 빈자리들을 채우고 있더군요.
물론 코미디적인 시퀀스들이 삽입이 되어서도 완성도가 유지가 되면 문제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러한 요소들 때문에 완성도까지 악영향을 주게 된다면 이것은 지양해야 될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한국 영화들에 - 장르와 소재에 상관없이 -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큰 문제라고 보고요. 캐릭터의 세밀한 묘사와 탄탄한 드라마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대를 포기한 채, 별 의미도 없는 코미디 시퀀스들을 삽입해놓으면 후반부에서 제대로 된 정서적인 응집력을 터뜨리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깔아놓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다보니 영화는 엉성해진 채 결국 신파로 갈 수 밖에 없는 거고요.
주의 :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서의 폭을 더욱 확장시켜서 전달하겠다는 의도로 여러 커플들을 설정해놓고 있던데요. 종반부에서 주인공 커플 외에도 이런 다수의 캐릭터들이 감정선을 이끌어나가는 주요한 역활들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캐릭터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드라마가 전개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랬어야 했을 시간대를 포기한 채, 가벼운 웃음만 전달하고 있는데 종반부에서 사랑과 관련된 감정선이 관객들에게 살아 있을리가 없습니다.
설경구 씨와 하지원 씨, 박중훈 씨와 엄정화 씨, 이민기 씨와 강예원 씨 등 영화 속 모든 주요 캐릭터들이 몸부림을 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지만 그런 스크린 속의 안타까운 모습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겁니다. 이민기 씨와 강예원 씨 캐릭터들을 보더라도 이 둘 사이를 그려나가는데 있어서 개연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과정들은, 그것마저도 코믹스러운 씬들 때문에 최소한의 묘사조차도 제대로 표현이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희생을 선택하는 이민기 씨에게서 슬픔과 감동을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결'만 있을 뿐, 그 앞에 존재해야 할 '기-승-전'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박중훈 씨와 엄정화 씨 캐릭터도 예외가 아닙니다. 딸을 헬기에 태워보낸 후 서로를 부등켜안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감독이 의도했을 부녀지간의 애틋한 사랑이라던가, 부부간의 회복된 사랑 등이 정서적으로 잘 느껴지지를 않더군요. 이들 캐릭터 또한 부실한 '기-승-전' 때문입니다. 전작들을 봤을 때 드라마를 뽑아 낼 능력이 없어 보이던 윤제균 감독의 연출 한계가 딱 이 수준인 겁니다.
그 밖에 그 높은 빌딩 위에 있었던 박중훈 씨 부부도 2차 쓰나미에 쓸려가는 마당에, 바닷물로 잠긴 도로에 떠있던 설경구 씨 등과 광안대교 위에 있었던 김인권 씨는 도대체 어떻게 생존한 건지 모르겠더군요. 유조선도 뒤집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 후, 강예원 씨가 타고 있었던 그 작은 요트는 어떻게 그대로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반적인 완성도와 드라마가 <디-워> 만큼이나 허술하고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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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도 매년 예외없이 허술한 깡통 블럭버스터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CG에 연출의 집중을 하며, 장르와 소재의 쾌감을 비주얼과 오디오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드라마가 실종되어 있어도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오락적인 묘미가 그래도 영화 속에 삽입이 되어 있는 거죠. 그러나 이 작품처럼 연출의 포인트와 의도가 할리우드와 달랐다면 - 그것이 제작비 때문이든 아니든 - 내러티브의 중심에는 코미디가 아닌 드라마가 있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종반부에서 펼쳐지는 연출을 보면 더욱 더 말입니다.
<해운대>의 경우 소재나 장르적으로 국내에서 전례가 없었던 경우였기 때문에, 1천만 관객들이 들어오고 수 많은 영화 속 허물들을 묵인할 수 있었겠지만요. 극장가의 성수기 때마다 이러한 작품들이 시도가 되며 반복이 될 때는 대중들의 반응이 결국에는 상당히 달라지리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이것이 가까운 미래 안에 벌어지게 될 일들은 아니겠지만, 관객이 등을 돌리게 될 때 그 책임은 결국 컨텐츠에 있는 거니까요. 매년마다 불거져 나오는 '한국 영화 위기설'이 관객들의 책임일까요? '천만 관객 돌파라는 허상 앞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어야 하는 오늘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