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로맨틱 코미디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르의 특성상 주 관객층은 여성들입니다. 이렇다보니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는 여성 관객들을 염두에 둔 여러가지 요소들이 삽입되고는 합니다. 얼마 전에 개봉이 된 <프로포즈>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오락성과는 별개로 진부한 연출과 엉성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지향해야 하는 요소들을 모두 삽입해 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주 관객층을 제대로 공략하는 이른바 기획이 잘 된 영화였습니다. 이 작품 또한 같은 장르이지만 좀 다르게 기획이 되었네요. 포스터를 보면 한 눈에 바로 영화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데, 여성 관객 뿐만이 아니라 남성 관객들까지 모두 상영관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보입니다. 때문에 코미디 요소는 유지가 되지만, 로맨틱한 요소들은 상당 부분 제거가 되어 있더군요. 물론 플롯의 구성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1)라는 책이 대중들에게 - 연애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들에게 - 인지도를 얻을 정도로,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바라며 꿈꾸는 애정관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며 현실인데요. 그 부분을 매우 노골적인 음담패설로 그려나가면서 웃음을 안겨줍니다. 아니, 음담패설이라고 표현하면 안되겠습니다. 상당 부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적인 대화(2)로 그려나가면서 웃음을 안겨줍니다.
로맨틱한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많이 제거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 모습과는 달리 결국에는 이 작품 또한 남성 관객들 보다는 여성 관객들을 향해서 연출이 된 작품이네요.
주의 :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속의 남성 캐릭터를 보면, 전혀 다른 타입의 남성 캐릭터를 복수로 그려나가고 있는데요. 제라드 버틀러가 직설적이며 터프한 마초적인 이미지의 남성 캐릭터라면, 에릭 윈터(의사역)는 젠틀하면서도 부와 명예를 다 갖춘 남성으로 나옵니다. 에릭 윈터는 사회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완벽한 남성상으로 그려지더군요. 거기에 더해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하며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까지 갖춘 모든 여성들의 로망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들 중 한명을 선택하게 되는 캐릭터는 당연히 여성인 캐서린 헤이글이고요. 즉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는 것인데, 결국에는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지요.
엔딩도 여성들이 꿈꾸는 방향으로 귀결이 됩니다. 머리로는 에릭 윈터를 원했겠지만, 가슴으로는 제라드 버틀러를 느끼면서 둘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되는데, '사랑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더군요. 살다보면 머리로 하는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음으로 하는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선택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사랑은 후자가 아닐까 싶고요. 정서적으로 여성 관객들의 이러한 부분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이 작품의 장르적인 백미라고 한다면 LA의 호텔 복도에서 제라드 버틀러가 왔다 갔다하며 고민을 하는 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 장면에 딱 알맞는 음악까지 흘러나오면서 로맨틱 영화다운 정서를 잠깐이나마 안겨주더군요. 이러한 정서를 상영관에서 좀 더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1989년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3)를 패러디하는 레스토랑에서의 시퀀스가 있던데요. 그 때나 지금이나 남성과 여성의 차이, 즉 서로 다른 애정관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 시퀀스가 아닌 두
영화의 비슷한 소재로 보았을 때 - 멋진 시도였습니다. 주연 배우들도 모두 바뀌었고,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 또한 이제는 모두 세대가 바뀌었지만 남성과 여성의 애정관은 오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다음 세대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이런 작품은 다음 세대에서도 계속 기획이 될 거고요.

(1)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과는 달리, 금성에서 온듯한 제가 화성에서 온듯한 여성을 만나서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연애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을 하고요. '일반화의 오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방을 존중하며 좀 더 아름다운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2) 언젠가 TV에 박수홍씨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여성 패널들이 "박수홍씨는 여성의 어느 부분에 매력을 느끼느냐?"고 질문들을 던지더군요. "예쁜 손", "눈" 이런 것 말고 솔직히 말해달라면서요. 그러자 웃으며 "엉덩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꽤 솔직한 대답,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대답을 한다는 - 긍정적인 -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 또한 여성의 엉덩이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낍니다.
(3) 이 멋진 작품을 꽤 우울한 시기에 관람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 기억이 맞다면 당시 서울극장에서 심야로 관람을 했었는데, 이 작품의 상영을 마지막으로 국내의 극장가에서는 한동안 심야 영화가 사라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심야 영화를 볼 수 있다며 극장을 찾았었던 암울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전기를 절약하자며 심야 영업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