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은 연출을 맡은 감독입니다. 하지만 더러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이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산드라 블록이 단연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녀의 작품들과 함께 해 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정이 들 만큼 든 것 같습니다.1964년생이니까 이제 한국 나이로 어느덧 46세입니다. 2006년작 <레이크 하우스>를 관람할 때만 하더라도 그런 느낌을 별로 못 받았었는데, 이번에 보니 그녀도 이제는 나이를 속일 수 없더군요. 스크린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깊게 드러납니다.
관객들이 "이제는 한 물 간 것 아니냐"고 비아냥 거릴 즈음에, 그녀는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북미의 흥행 성적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으로 그녀의 수 많은 출연작 중, 최고의 스코어(1)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가 아닌, "보여주고 있습니다"로 표현한 이유는, 이제 조연으로 전락해야 할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2의 전성기를 여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러한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더군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주 고객층은 여성 관객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중년 여배우의 파트너로 10살 차이도 더 나는 연하의 라이언 레이놀즈를 투입시켰네요. 저는 이 배우를 얼굴 잘 생기고 근육질의 배우로 기억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정장의 피트되는 라인이 정말 멋지더군요. 왜 그런 표현이 있죠. '남성은 여성의 누드에 매력을 느끼고, 여성은 멋진 슈트를 입은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고요. 여성 관객들이 좋아할만 할 것 같았습니다. 이것 외에도 이 작품은 이러한 장르의 주 관객층을 공략하는 요소들이 꽤 삽입되어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진부한 연출과 더불어 개연성이 실종되어 있음에도 이러한 장르의 영화가 성공을 하려면 어떠한 요소들을 삽입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야겠네요.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인데, 성공적인 여러가지 요소들을 삽입해서 주 관객층을 제대로 공략하는 이른바 기획이 잘 된 작품입니다.
주의 :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멋진 슈트를 입은 채 코미디와 함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섹시함을 발산해 내는 라이언 레이놀즈, 그가 슈트를 벗게 되는 중반부부터는 예외없이 신데렐라 스토리가 결국 플롯의 중심입니다. 마귀 할멈과도 같은 여상사와 멋진 외모의 부하 남직원이 꽤나 유쾌한 웃음을 가득 안겨주며, 창의적인 연출을 보여주는 전반부는 매우 좋았는데요. 안타깝게도 그 이후부터는 이 작품 또한 전형적인 공식 안으로 그대로 걸어갑니다. 전반부만 놓고 본다면 근래에 본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 중에서 가장 즐거웠었기에 아쉬움이 크게 들더군요.
슈트가 섹시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매력남이 시간이 흐르면서 북유럽의 왕자가 부럽지 않은 캐릭터로 바뀌게 되고, 이러한 설정들과 함께 보여지는 코믹한 요소 등은 결국 진부한 연출, 엉성한 완성도 등과 마구 뒤섞이게 됩니다. 일반화된 공식 그대로 진행이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피 엔딩으로 귀결이 되는데요. 두 남여가 다시 만나게 되는 씬에서 정서적으로 별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이 작품의 엉성했던 완성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산드라 블록의 감정 변화는 비교적 잘 그려지고 있지만, 라이언 레이놀즈의 감정 변화에 개연성이 실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르상 상업적으로 반드시 삽입되어야 할 요소들이 잘 배치되어 있고, 남여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배우들도 매우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산드라 블록도 꽤나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만, 생각 외로 라이언 레이놀즈 또한 캐릭터를 잘 그려내더군요.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영화였지만, 108분 동안 산드라 블록과 함께 웃을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렵니다.

(1) 북미 스코어 1억6천만$ (그녀의 작품 중 북미 박스오피스 최고의 흥행작은 1억2천만$를 기록했던 1994년작 스피드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