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시 호러 장르로 금의환향 한 것을 두 팔 벌려서 환영하시는 분들이 꽤 많으실 것 같습니다. 2000년에 발표한 <기프트> 이후 9년만에 호러 장르로 돌아온 셈이네요. 그 사이에 발표한 몇 편의 호러 작품들은 연출이 아닌, 제작에만 참여를 했었으니까요.그동안 국내의 수입/배급사들은 포스터 등에 큰 글씨로 '샘 레이미'라고 적어놓고, 아주 작은 글씨로 '제작'이라고 적는 낚시질 마케팅을 계속 해왔습니다. 재능을 인정받은 감독들이 제작에만 참여하게 되었을 때, 항상 이런 식으로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은 관객이나 팬으로서 다소 불쾌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관객이 아닌 이상 '제작'이라는 작은 글씨 보다는, 큰 글씨로 삽입되어 있는 '감독의 이름'만을 주목하게 되는 경우도 많을 테니까요.
이번 신작에서는 그가 제작과 각본 외에, 무엇보다도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천부적인 재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할리우드의 호러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무척 고어한 표현으로 공포감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기대됐었습니다. 최근에 그가 제작에 참여한 호러 영화들은 고어한 표현으로 공포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관객을 점점 조여오면서 구석까지 몰고 가는듯한 심리적인 공포감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 호러 영화들의 일반적인 스타일과는 다른 표현 방법을 선택한 것 같아서,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이러한 - 그가 최근에 제작한, 그리고 연출했었던 - 호러 영화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오프닝 크레딧을 보면서 감이 오더군요.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B급 호러 영화와 클래식의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프닝 크레딧이 흐를 때 의도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과잉 전달하려고 하는듯한 음악을 들으면서, 예상되었던 것이 결국은 맞았던 영화였는데요. 이 작품은 샘 레이미 감독이 모든 공포 영화 팬들에게 헌정을 하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 작품은 그가 팬들에게 헌정하는 작품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저질 고어물에 지쳐 있었던 팬들을 위로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B급 호러 영화의 교과서와도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B급 호러 영화들은 정작 창의성과 연출력의 부재로 인하여 관객들에게 안겨주는 것은, 피만 튀기는 영상(1)과 깜짝 놀라게 하는 음향이 전부였었는데요. 그러한 틀에 박힌 듯한 진부한 고어물을 버려도, 이렇게 B급 호러물을 완성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B급 호러 영화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그 또한 노골적으로 의도된 과잉 음향을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클래식한 연출과 과잉 음향에 오히려 매료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상영 시간 내내 "B급 호러 영화는 이런 맛에 보는거다"라고 속삭이는듯 했습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도대체 이 양반 뭐하고 있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시선으로 B급 호러물임을 인지하며 - 이 작품은 이 시선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
바라보게 되면 화룡점정을 찍는 공포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장르의 특성상 깊이있게 묘사할 수는 없었겠지만 관객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화두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가운 시선,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남 탓만 하고 사는 이기적인 현대인들,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나아가야 하는 직장 내에서 동료는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이득과 처세만을 쫓는 모습 등을 비판합니다. 특히 자신이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단추가 들어있는 종이 봉투를 누구에게 전달해야 하나 고뇌하는 모습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저는 새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호러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니라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B급 공포 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아우르며 버려야 할 요소들은 - 저질 호러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고어한 표현과 섹스씬 등 - 버리고, 취해야 할 요소들은 보여주는 영화이지만, 저는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무섭다거나 놀라는 씬도 없었던 것 같고요. 한마디로 제가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원하며 취향에 맞는 호러물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 아더스>처럼 심리적인 공포감을 안겨주는 작품인 것 같아요. 반전 여부를 떠나서 말입니다.
(1) 이 작품에서도 딱 한차례 피가 튀기는 장면이 나오던데요. 이것은 팬 서비스를 위해서 삽입해 놓은 것 같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