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호러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시 호러 장르로 금의환향 한 것을 두 팔 벌려서 환영하시는 분들이 꽤 많으실 것 같습니다. 2000년에 발표한 <기프트> 이후 9년만에 호러 장르로 돌아온 셈이네요. 그 사이에 발표한 몇 편의 호러 작품들은 연출이 아닌, 제작에만 참여를 했었으니까요.

그동안 국내의 수입/배급사들은 포스터 등에 큰 글씨로 '샘 레이미'라고 적어놓고, 아주 작은 글씨로 '제작'이라고 적는 낚시질 마케팅을 계속 해왔습니다. 재능을 인정받은 감독들이 제작에만 참여하게 되었을 때, 항상 이런 식으로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은 관객이나 팬으로서 다소 불쾌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관객이 아닌 이상 '제작'이라는 작은 글씨 보다는, 큰 글씨로 삽입되어 있는 '감독의 이름'만을 주목하게 되는 경우도 많을 테니까요.  

이번 신작에서는 그가 제작과 각본 외에, 무엇보다도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천부적인 재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할리우드의 호러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무척 고어한 표현으로 공포감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기대됐었습니다. 최근에 그가 제작에 참여한 호러 영화들은 고어한 표현으로 공포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관객을 점점 조여오면서 구석까지 몰고 가는듯한 심리적인 공포감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 호러 영화들의 일반적인 스타일과는 다른 표현 방법을 선택한 것 같아서,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이러한 - 그가 최근에 제작한, 그리고 연출했었던 - 호러 영화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오프닝 크레딧을 보면서 감이 오더군요.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B급 호러 영화와 클래식의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프닝 크레딧이 흐를 때 의도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과잉 전달하려고 하는듯한 음악을 들으면서, 예상되었던 것이 결국은 맞았던 영화였는데요. 이 작품은 샘 레이미 감독이 모든 공포 영화 팬들에게 헌정을 하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 작품은 그가 팬들에게 헌정하는 작품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저질 고어물에 지쳐 있었던 팬들을 위로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B급 호러 영화의 교과서와도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B급 호러 영화들은 정작 창의성과 연출력의 부재로 인하여 관객들에게 안겨주는 것은, 피만 튀기는 영상(1)과 깜짝 놀라게 하는 음향이 전부였었는데요. 그러한 틀에 박힌 듯한 진부한 고어물을 버려도, 이렇게 B급 호러물을 완성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B급 호러 영화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그 또한 노골적으로 의도된 과잉 음향을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클래식한 연출과 과잉 음향에 오히려 매료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상영 시간 내내  "B급 호러 영화는 이런 맛에 보는거다"라고 속삭이는듯 했습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도대체 이 양반 뭐하고 있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시선으로 B급 호러물임을 인지하며 - 이 작품은 이 시선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
바라보게 되면 화룡점정을 찍는 공포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장르의 특성상 깊이있게 묘사할 수는 없었겠지만 관객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화두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가운 시선,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남 탓만 하고 사는 이기적인 현대인들,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나아가야 하는 직장 내에서 동료는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이득과 처세만을 쫓는 모습 등을 비판합니다. 특히 자신이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단추가 들어있는 종이 봉투를 누구에게 전달해야 하나 고뇌하는 모습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저는 새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호러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니라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B급 공포 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아우르며 버려야 할 요소들은 - 저질 호러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고어한 표현과 섹스씬 등 - 버리고, 취해야 할 요소들은 보여주는 영화이지만, 저는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무섭다거나 놀라는 씬도 없었던 것 같고요. 한마디로 제가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원하며 취향에 맞는 호러물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디 아더스>처럼 심리적인 공포감을 안겨주는 작품인 것 같아요. 반전 여부를 떠나서 말입니다.

(1) 이 작품에서도 딱 한차례 피가 튀기는 장면이 나오던데요. 이것은 팬 서비스를 위해서 삽입해 놓은 것 같더군요.
by 배트맨 | 2009/06/13 18:07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5) | 덧글(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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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쉬타카 at 2009/06/13 23:08
오랜만에 극장에서 즐긴 B급 호러무비였습니다! 샘 레이미는 역시 이 쪽에 더 어울리는 것도 같아요 ^^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06/13 23:40
B급 호러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분이라면 상당히 만족스럽게 상영관을 나설 수 있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저는 장르를 떠나서 B급 영화들과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 것 같고요. T.T

샘 레이미 감독은 블럭버스터 작품에서 계속 보고 싶습니다. 이런 쪽으로 데려가지는 말아주세요. 아쉬타카님께서 양보하셔야 합니다. ^^*
Commented by 수룡 at 2009/06/13 23:25
무섭나요? 무서운 영화는 절대 못 보는데, 이 영화는 보고 싶더라고요-ㅁ-;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06/13 23:46
아마 수룡님께는 꽤 무서운 영화가 되실 것 같습니다. 제 바로 옆에 여성 관객이 앉았었는데, 몸을 뒤로 젖히면서까지 놀라고는 했었으니까요. 게다가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영화거든요. (저는 이상하게 호러 영화를 보면서 놀라는 경우가 좀처럼 없네요. T.T)

'고어한 표현이 있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중간 중간 상영관 안에 관객들의 신음 소리가 가득해지는 씬도 꽤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B급 영화와 코드가 맞아야만 재미있게 보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B급 호러 영화거든요.
Commented by 무비조이 at 2009/06/13 23:50
어디가던지 하는 이야기지만 샘 레이미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호러 영화 찍어내야합니다..
이 영화보면서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한마디로 끝내준다 이 생각빡에 안들더군요....
당연히 내년에 개봉할 이블데드4에 대한 기대치가
이 영화때문에 지금 배로 뛰었습니다...

빨리 이블데드4가 개봉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1인입니다.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06/13 23:58
그가 가장 최근에 연출했던 호러 영화 - 그래도 벌써 9년 전 작품이지만요 - <기프트>와 비교해 보면, 이번 작품은 아주 작정을 하고 만든 것이 그대로 스크린에 드러나더군요. ^^*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여러가지로 만족스럽게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저는 장르를 떠나서 B급 영화들과는 코드가 안맞는 것 같습니다. 만족스럽게 본 B급 영화들이 거의 없어서요.

<이블데드 4> 정말 많은 분들이 흥분하며 기다리시는 것 같던데요. 아마 그 작품도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팬들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안겨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호러 영화만 계속 찍어야 한다니요.. 블럭버스터 작품에도 좀 빌려주세요. T.T)
Commented by 이카 at 2009/06/14 04:38
아직 보지 못해서 차마 클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서 보러가야 할 텐데요... 제가 즐겁게 본 공포영화가 오퍼나지나 숨박꼭질 같은, 고어물이 아닌 공포영화들이라는 점에서, 피가 없는 공포영화라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그럼요.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피는 꼭 필요한 게 아니라고요! 공포영화를 사랑하는 제 동생과 같이 보러 갈 작품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전 기쁩니다. :) 다녀와서 읽을 배트맨님의 감상도 기대되고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06/14 16:48
재미있게 보신 호러물이 <오퍼나지>와 <숨박꼭질> 이셨다면 이 작품은 성격이 좀 판이하게 다릅니다. 말씀하신 작품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샘 레이미 감독이 일부러 작정을 하고 만든 B급 호러물이거든요. 때문에 제가 그랬듯이 이카님께서도 이 부분의 - B급 호러물 - 이질감을 느끼실 수도 있지 않으실까 조금은 우려되고요. (물론 이번 작품이 B급 영화로서는 흠 잡을 곳이 없는 영화라는 생각은 듭니다. B급 영화의 정점을 찍는 잘 만들어진 호러물이예요.)

작품은 잘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B급 영화들과는 코드가 맞지 않아서요. 게다가 호러물을 보면서 좀처럼 놀라지 않는 탓에 저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동생분께서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으실듯 한데, 이카님께서도 마음껏 즐기시고 오셨으면 좋겠네요. ^_^
Commented by 포케 at 2009/06/15 01:35
개인적으로는 주온처럼 깜짝깜짝 놀래켜주는 동양식 호러를 좋아합니다만 이 작품은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서양식 호러는 그다지 무섭지가 않더라고요.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그런가... 사람이 더 무서운... -_-;;;

어쨌든 볼 계획이었습니다만... 이번 주말은 바빠서 놓쳤습니다... ㅜㅜ
다음 주말까지 버텨주길 바라면서;;;(스믈스믈;;;)

유쾌한 한 주 보내세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06/15 06:56
포케님께서 말씀하신 동양식 호러라고 한다면 심리적인 공포감을 표현해 내는 작품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저도 그런 호러물을 좋아합니다. ^^*

이번 작품은 B급 호러물이기 때문에 - 샘 레이미가 그렇게 기획하고 연출한 - 다소 성격이 다른 호러물이라고 해야되겠습니다. 하지만 B급 호러물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것은 알겠더군요. 다만 저와는 취향이 좀 안맞는듯 했고요.

무엇보다도 이상하게 저는 호러물을 보면서 놀라는 경우가 좀처럼 없습니다. 이러면 호러 장르를 즐길 수 없는데 말이죠. T.T

다음주까지는 버티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만약 버티고 있다면 교차 상영으로 돌 것 같네요. 재미있게 관람하시고요. 시원한 한주 맞으세요. ^^;
Commented by glasmoon at 2009/06/17 16:29
저또한 공포 영화를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슬래셔 무비나 이런 B급 호러는 개그 영화로 취급하고 있죠.
킥킥깔깔거리며 웃어주면 스트레스가 싹~ ^^;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9/06/17 18:02
저와 비슷하시군요. ^^* 그런데 슬래셔 무비는 참 싫어합니다. 심리적인 공포물을 좋아하는 터라, 잔인한 묘사는 보는 것이 고역스러워서요. <쏘우 1>을 극장에서 보며 기겁을 한 후로 <쏘우> 시리즈는 외면을 했네요.

이번 작품도 바로 옆의 여성 관객은 몸을 뒤로 젖혀가면서까지 놀래던데 저는 그냥 무덤덤하게 봤어요.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B급 영화와는 코드가 맞지를 않아서 재미있게 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샘 레이미가 B급 호러물을 아주 이상적으로 뽑아낸 것은 알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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