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했었던 두편 그러니까 <터미네이터>가 1984년작, 그리고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이 1991년작이였으니 무려 18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사이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이 연출한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 발표되기는 했었지만, 차라리 안만들어진 것만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편을 이 시리즈에서 제외를 시키고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단어보다는 '세월'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 18년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버린 것 같습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더 이상 터미네이터 캐릭터를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늙어버렸고, 린다 해밀턴과 마이클 빈 등은 이제 주류 영화에서 만나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늙어가고 있네요.
1편에서 카일 리스역을 맡았던 마이클 빈을 작년에 <플래닛 테러>를 관람하면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많이 늙었고 살도 많이 찐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무척 반가웠고, 배우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제 가슴 속에는 너무나 멋졌던 시절의 그들을 소중히 담아놓고 있으니까요.
맥지 감독이 이번 신작을 연출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다소 의아스럽기는 했습니다. 지난 3편에서 큰 실망을 안겨줬었기 때문에, 이번 만큼은 모든 팬들이 수긍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천부적인 재능의 감독이 와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물론 어느 감독이 연출을 하던 제임스 카메론이 보여준 오락성과 완성도를 다시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 할테지만요.
하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야말로 감독의 재능만 있다면 축복 받은 시리즈가 될 수 있습니다. 비약적으로 발달한 CG 덕분에 이제 할리우드에서, 감독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을 구현해내지 못하는 것은 없다고 봐야 하니까요. 거기다가 엄청난 제작비도 투입을 하고 있죠. 이 작품 무려 2억불을 쏟아부은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맥지 감독, 역시 제 가슴에 못을 또 박는군요.

비주얼을 감각적으로 뽑아내는 것에는 재능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역시 명작의 반열에 올라 있는 이러한 작품을 연출하기에는 한계를 보여주네요. 액션과 스릴러가 환상적인 밸런스를 이루며, 소름끼칠 정도로 관객들을 휘어잡아 나가던 전작들의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작품입니다. 이른바 '터미네이터'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장르적인 매력을 전혀 살려내지 못하고 있던데, 이 작품은 돈을 많이 쏟아부은 액션만 삽입해 놓은 팝콘 영화일 뿐이네요. 여름 시즌에 흔히 볼 수 있는 깡통 블럭버스터 작품 말입니다.
프리퀄인 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전통적인 설정 등을 일부만 스케치한 후, 새로 그려내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겠지만 '스릴러'적인 요소들을 전혀 맛볼 수 없는 것은 큰 낭패감을 안겨줍니다. 돌이켜 보면 제임스 카메론의 1편과 2편은 스릴러를 뛰어넘는, 마치 호러 장르와도 같은 쾌감을 화려한 액션 시퀀스 속에 가득 그려냈었던 것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프리퀄이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이번 4편에서는 처음으로 전통적인 설정도 깨져버렸더군요. 터미네이터가 등장하면서 그려지게 되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대결이 펼쳐지는 구도를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이러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마술을 부리며, 관객에게 가장 큰 오락적인 쾌감을 안겨줬었던 요소들이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 말입니다. '터미네이터'라는 제목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아무리 프리퀄이라고 하지만 전작들과의 연계성이 너무나 희미합니다. 또한 전작들을 추억하고 있는 관객들이 기대했었던 요소들이 실종되어 있습니다. 그냥 별개의 블럭버스터 작품으로 분류하고 싶네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전작들을 만들었을 당시보다 기술력도 눈부시게 진화했고, 제작비도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입하고 있는데 오히려 오락성과 완성도는 퇴보했습니다. '터미네이터'를 오랜 세월동안 기다려왔던 저로서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획력의 부재, 그리고 연출의 무능함으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바로 감독의 천부적인 재능 아니겠습니까.
그 유명한 대사인 "I'll be back" 이라던가, 전작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컷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이러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모습들이 나와야 하는가? 어떤 시퀀스를 만들어서 삽입해야만 팬들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은 마치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삽입해놓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본편 상영이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상영관에 앉아 있는데, 허탈함을 넘어서는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깊은 배신감과 실망감을 달랠 길이 없어, 상영관의 오디오 퀄리티로 그 유명했던 메인 테마곡이라도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요. 그 곡조차도 안흘러나오더군요.
정말로 이 시리즈는 2편을 마지막으로 끝났어야 했나 봅니다. 아니면 정말로 Salvation을 해낼 수 있는 감독이 오던지요. 팀 버튼이 손을 뗀 후 망가져버렸던 '배트맨' 시리즈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일으켜 세웠듯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