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하워드는 재능이 풍부한 감독입니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오락성과 함께완성도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감독중의 한명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위의 두가지 요소와 더불어, 작품성까지 모두 갖춘 이상적인 영화를 발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론 하워드의 영화가 나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매우 큰 실망감을 안겨준 작품이 있었습니다. 2006년작 <다 빈치 코드>를 관람하면서는 형편없는 오락성과 완성도에 깊은 탄식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엉성한 연출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었습니다.
댄 브라운의 텍스트를 영화로 옮겨서, 미스테리 스릴러를 완성시키는 것에 모자람이 너무 많이 보이더군요. 원작 소설의 재미와 매력을 조금도 살려내지를 못했는데, 아마 소설책을 미리 읽지 않았어도 <다 빈치 코드>에 대한 실망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천사와 악마>는 소설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영화를 보니, 그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과감한 생략과 더불어 오락적인 요소들을 많이 삽입해 놓았네요. 댄 브라운의 텍스트가 안겨주는 매력보다는, 론 하워드의 영화가 안겨주는 매력을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코 전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겠죠.
<다 빈치 코드>의 소설책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번 작품의 원작 또한 로버트 랭던 교수가 사건의 열쇠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 큰 매력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영화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모두 생략되어 있더군요. 간단하게 묘사하며 댄 브라운의 텍스트를 빠른 속도로 빠져나온 다음, 영화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퀀스로 연결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영화답지 않게 이번 신작 또한 전체적인 완성도는 만족스럽지가 않네요.
영화속에서 포기한 - 생략한 - 요소들이 결국에는 엔딩까지 계속 연결되는 열쇠이기 때문에, 미스테리 스릴러의 장르적인 쾌감도 반감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관객으로서 궁금함을 가질 시간도 없이, 로버트 랭던 교수가 간단히 풀어버린 후 바로 다음 단계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장 잘 구현해냈어야 했을 매력이 사라진 것 아닐까 싶네요. 댄 브라운이 소설을 써나가면서 가장 고심하며 적어나갔을 부분들 말입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론 하워드가 오락적인 묘미를 집중시키며, 영화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는 것은 바로 '불'의 열쇠가 풀려나가는 시퀀스부터입니다. 지나친 생략과 단순화시킨 전제 때문에, 하나씩 열쇠를 풀어나가는 묘미를 잃어버린 채 완성도와 오락성의 실종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불'의 시퀀스부터 장르적인 오락성을 발휘하더군요.
특히 종반부의 헬리곱터 씬이 나오는 시퀀스는 정서적으로도 임팩트가 제법 있었습니다. CG의 퀄리티도 뛰어나서 보는 재미도 있었고요. 이 작품 말입니다. 열쇠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면 "역시 론 하워드의 작품이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을텐데요. 완성도는 포기한 채 오락성에만 집중을 한 반쪽짜리 영화인 것 같아서, 그의 팬으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드는 킬링 타임용 영화였습니다. 아, 음악만큼은 정말 좋더군요. 나중에 스탭롤이 올라갈 때 보니 한스 짐머의 OST였습니다.
종교(천사)와 과학(악마)이라는 서로 대칭에 서 있는 부분에서 밸런스를 잘 살려내지는 못한 것 같지만, 과학은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도구였으므로 종교에 집중된 연출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는 관객의 관점에 따라서는 종교가 천사이자 악마인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바티칸을 구하는 로버트 랭던 교수가 천사로, 그리고 궁무처장 즉 종교가 악마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신이시여, 당신을 부정하며 오락적인 묘사를 탐미하는 저를 용서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