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즐겨 사용하는 소재중의 하나입니다. 큰 액수의 제작비를 투입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오락성과 함께 비주얼, 그리고 오디오의 임팩트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팝콘 영화의 범주안에서 제작이 되고는 합니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도 이러한 요소들일테고요. 그런데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오락성만을 추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철학보다도 더 심오한 여러가지 것들을 삽입해 놓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어느 것 하나도 깊게 묘사하지를 못하며 만족스럽게 풀어나가지를 못하더군요.
물론 연출의 완성도가 높았다면 이러한 시도가 매우 인상깊게 다가왔겠지만, 장인으로 인정 받는 감독이 아니라면 오락성 하나라도 확실하게 즐길 수 있도록 연출의 포인트를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작품은 오락성과 완성도를 모두 쫓고 있지만, 결국에는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쳐버린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시길..
비주얼적으로 임팩트가 컸었던 두개의 시퀀스가 삽입되어 있기는 합니다. 특히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처참한 현장을 니콜라스 케이지의 시선으로 훑어나가는 동선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내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참혹함을 잘 살려냈더군요. 지하철의 사고 시퀀스도 꽤 잘 만들어낸 시퀀스였지만, 워낙 비행기 사고 시퀀스의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감흥이 덜 할 정도였습니다. 편집할 때 순서를 바꿔놓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로요. 하지만 이 두개의 시퀀스를 제외한다면 오락적으로 쾌감을 안겨주는 연출이 거의 없습니다. 제작사의 의도가 그랬는지, 감독의 의도가 그랬던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대부분의 상영 시간에서 보여지는 연출은 다소 심오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상영 시간을 121분이나 할애하면서도 이 부분의 매듭을 잘 풀어나가지 못하더군요.

결정론을 바탕으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캐릭터에는 과학을 투영하고, 부친의 캐릭터에는 종교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해결 또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니, 종교에게 받아들이라고 부친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엔딩씬을 보면 마치 성경책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를 보는듯 합니다. 과학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며 해결할 수 없었으나, 종교는 지구의 멸망을 이겨내고 다시 인류사를 시작한다는 마무리를 보여주더군요. 디스토피아를 앞둔 상황에서 마냥 무기력하기만한 인간과 과학이였지만, 종교는 유토피아로 새로이 출발하는 모습을 보면요.
또한 결정론에다가 과학과 종교, 거기에 더해서 외계 문명설까지 엮어져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학이 종교에게, 그리고 종교는 영화속에서 외계 문명설로 다시 부정을 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심오한 문제들중 한가지에만 집중을 해도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였을텐데요. 오락성은 물론이고 이 작품의 정체성을 그 어디에서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위에 밝힌 두개의 시퀀스를 제외한다면 연출이 대부분 여러가지 설을 다루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락성의 부재보다는 완성도의 부재가 더 실망스럽게 다가오더군요.
기존 팝콘 영화들의 범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완성도와 깊이가 없을 때는 팝콘 영화만도 못한 졸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과학과 종교, 그리고 결정론과 외계 문명설을 모두 스스로 던져놓고 자신도 그 문제들을 풀어가지 못할 때, 관객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정체성을 찾기조차 힘든 영화였습니다.
덧말 - 참고로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지난 주중에 리뷰를 올렸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글을 올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