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 걸려 있는 작품들중에서 놓친 영화들이 아직도 상영되고 있으면 관람하려고 극장의 예매창을 훑어보았는데, 처음에는 이 작품 극장가에서 내려간줄 알았습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이 작품일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거든요. 원제를 제멋대로 바꿔서 개봉시키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였지만, 이번 제목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옵니다. 그냥 원제 그대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로 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국내 개봉 제목을 보니 그동안 마케팅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짐작이 가더군요.
우디 알렌 감독의 최근작인 <매치 포인트>와 <스쿠프>는 뉴욕을 벗어나 런던이 배경이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바르셀로나의 풍광을 담아내고 있네요. 하지만 우디 알렌은 여전합니다. 제작비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을 것 같고요. 5.1채널이 아닌 모노로 녹음된 음향 포맷까지요. 확실히 이 양반은 현대 영화의 일반적인 기교와 룰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영화 철학이기도 할텐데요. 그래서 그런지 상영 도중에 나가버리는 관객이 대여섯명 정도 있었습니다.
친구와 가끔씩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은 살아가면서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1935년생인 노년의 감독이 관록과 삶의 지혜가 충분히 쌓였을 나이에 이르러서 관조하게 될 로맨스에 대한 정의가 무척 궁금해지더군요.
보는 내내 황당하다는듯한 웃음 소리가 가끔씩 상영관 안에서 터져나오던데요. 우디 알렌 감독이 그려나가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판타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꿈꾸는 것 또는 숨기고 있는 그런 모습들을 그대로 투영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키(레베카 홀)는 이성을 뜻하고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는 감성을 뜻하며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와 주디(패트리시아 클락슨)는 이성과 감성 사이를 표현하는 것 같더군요. 마리아가 감성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주디는 대조적으로 이성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애를 하다보면 - 또는 부부로서 살아가다 보면 - 이 네명의 캐릭터들을 모두 경험하게 될 때가 있지 않나요. 저와 제 주변 친구들은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타인의 시선에는 비키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겠지만요. 그렇게 보여지기를 원하고들 있을테고요.
우디 알렌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네명의 캐릭터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감추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또는 이중적인 모습을 조롱합니다. 하이에르 바르뎀에 엮이게 되면서 영화속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이, 관객에게는 마치 판타지인 것처럼 보였겠지만 결코 판타지가 아닌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더불어 극중 대사에서 '완성되지 않는 로맨스가 낭만적이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사랑에는 완성이라는 것이 없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더군요. 살다보면 이 영화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모두 경험하게 될 때도 있지만 - 또는 꿈꿔볼 때도 있지만 - 사랑에 관한한 정답을 찾는다는 것이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평단은 이 작품에 무려 16개의 트로피를 안겨줬는데 골든글로브에서는 최우수 작품상(코미디 뮤지컬 부문)도 수상했네요. 바로 이런 시선이 평단과 일반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완성도와 메시지로 보았을 때는 이러한 수상 결과들에 수긍이 가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기교와 스타일에는 일반적인 대중들이 쉽게 공감하기 힘든 것도 사실일테니까요. 우디 알렌의 팬이라면 상영관을 나서면서 이것 저것 생각해 볼 것들을 안겨주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굳이 보시라고 추천을 해드리고 싶지는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상영관 안에서 실소를 터뜨리던 관객분들.. 앞으로 살다보면 결국에는 경험하게 될 겁니다. 우디 알렌이 그랬듯이, 또한 내가 그랬듯이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