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배우, 그리고 위대한 감독!' 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의 연출작들을 보면 드라마의 완성도가 그야말로 완벽했었습니다. 특히 내러티브를 섬세하며 탄탄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고 있지요. 1930년생이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이제 80세에 접어들고 있는데, 여전히 그가 연출해내는 드라마의 밀도 높은 완성도는 퍼펙트합니다.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때도 있지만, 그가 한결같이 보여준 작품들을 되돌아봤을때 이 정도의 커리어면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 노년의 거인 아니, 거장이 발표하는 작품들을 기다려오고는 했었습니다. 그는 나를 이미 오래 전부터 매료시켜왔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2008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었고, 역시 수상은 못했지만 지난 골든 글로브에서도 여우주연상(안젤리나 졸리)과 작곡상(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는 미술감독상, 촬영상, 여우주연상 등 3개 부문에 올라가 있네요. 지명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독상이나 작품상 후보로 올라가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번 작품 또한 영화가 안겨주는 메시지와 드라마적인 완성도가 마음을 깊숙히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장르는 범죄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141분의 상영 시간동안 극에 몰입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관객인 내가 극중의 안젤리나 졸리 이상으로 분노를 느끼게 되더군요. 흔치않은 경험이였습니다.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공포감이 마구 뒤섞여서, 상영관에 앉아있던 나를 끊임없이 흔들어댄 영화였습니다.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시길..

어린이의 실종이라는 실화를 다루고 있지만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가 여성이라는 점과, 특히 정신병원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피해자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설정은 사회적인 약자를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이들을 보호해주고 끌어안아줘야 할 공권력이 무능하고 부패할때,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계층은 결국 사회적인 약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오프닝 씬의 첫 장면과 엔딩 씬의 마지막 장면에 모두 흑백 처리가 된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시절이 한때는 그들도 있었지만, 영화의 앞 뒤로 영상을 흑백 처리해 놓은 것은 192
8년에 일어난 아주 오래 전 과거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2009년 오늘날의 미국은 적어도 이런 부끄러운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제가 극중의 안젤리나 졸리 이상으로 분노를 느끼며 몰입을 하게 된 것은 2009년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견찰이라고 불리우고, 검찰은 권력의 애완견이 되어버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절인 1928년의 미국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인 약자들은 누구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을까요? 누가 사회적인 약자인 우리들을 끌어안아주고 있을까요? 정의라는 것이 과연 살아있는 사회인가요?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권력은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습니까? 극중 대화에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경찰의 권위에 도전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라는 표현이 나올 때는 제 가슴이 다 쿵쾅거리며 뛰더군요.

실종된 아들을 찾는 어머니와 더불어, 살인마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플롯은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장르적인 매력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또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씬은 없지만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공포감을 살려내더군요. 그랬기에 재판 과정을 교차 편집함으로서 공권력과 살인마 모두에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씬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교차 편집은 재판을 받고 있는 두 무리
, 즉 본분을 망각한 무능하며 부패한 공권력은 끔찍한 살인마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사회의 정의와 더불어 존경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계층의 사명감과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끔찍한 살인마와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인 관객들에게는 잘 만들어진 드라마와 스릴러를 맛볼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다가왔겠지만, 저는 이 작품의 드라마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스릴러에서는 몸이 움찔할 정도로 공포심과 절망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끝으로 시간이 이제 많이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많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이 노년의 거장에게 경의를 표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