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유하 감독을 참 좋아합니다. 그의 최근 두 작품을 매우 재미있게 관람했었고, 무엇보다도 오락성과 완성도 두가지를 모두 보여주는 흔치 않은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그에 대한 이러한 신뢰에 큰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유하 감독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에는, 전작 두편의 오락성과 완성도가 매우 뛰어났었기 때문에 좀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에 느낀 실망감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장르는 사극이고 소재는 세 남여가 얽히면서 벌어지게 되는 치정극인 셈인데, 믿을 수 없게도 유하 감독은 장르와 소재를 모두 제대로 풀어내지를 못합니다.
좋은 배우라면 장르를 넘나들며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줘야 하듯이, 좋은 감독이라면 장르에 상관없이 뛰어난 연출을 보여줘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무려 100억원이나 되는 제작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미장센이 영화적인 완성도와 보는 재미를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배우들이 대사를 하지 않고서도 미장센을 활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한다던가, 무언의 언어로 관객들과 소통을 하는 씬 또는 시퀀스가 있다면 이것은 물론 매우 중요한 전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해당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미장센이 아무리 돋보이는 - 의도한 - 씬이라도 버리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사극이 아니였다면, 그리고 100억원이나 투입된 작품이 아니였다면 이처럼 별 의미가 없는 다수의 시퀀스들을 봐야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유감스럽지만 유하 감독은 사극 장르의 활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남여가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게 되는 치정극, 즉 소재도 전개가 썩 매끄럽지를 못합니다. 캐릭터에 대한 묘사를 하는데 전반부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각 캐릭터들의 내면(왕과 신하) 및 갈등(소외받은 왕비)을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기 때문에 상당한 지루함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섬세히 묘사되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는 주진모씨 밖에 없더군요.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시길..

그리고 이러한 치정극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감도 실종되어 있습니다. 신하와 왕비의 관계를 눈치채기 전, 그리고 마침내 그 사실을 알게된 왕의 시선을 피해서 아슬아슬하게 밀회 관계를 즐겨나가는 스릴감은 온데간데 없고, 반복되는 섹스 씬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연출의 묘미가 참 많이 아쉽더군요.
욕정에서 출발하여 사랑으로 귀결되는 과정의 동기와 묘사 또한 찾아볼 수 없었는데 신하와 왕비는 왜 사랑하게 된 것일까요? 왜 마지막에서는 서로를 향해서 사랑을 애타게 표현했었던 것이였을까요? 여러분은 애정이 없던 상대방과 살을 섞으면 사랑이 솟아오르던가요. 원나잇 스탠드에서 사랑이 찾아오던가요. 왕이 연인이였던 신하에게 느끼는 분노는 정서적으로 공감이 되었지만, 신하와 왕비가 서로에게 느꼈던 사랑에는 동화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인성씨와 주진모씨의 동성애 묘사가 거부감을 느끼게 된 요소는 아니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고 완성시키느냐 하는 것이니까요. 한국 영화로서는 자주 집행할 수 있는 제작비가 아닌 100억원이나 사용을 하면서 쓰디 쓴 교훈을 얻게 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지만, 유하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무엇이 실패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그가 전작들을 통해서 보여준 재능을 여전히 믿고 있으니까요.
관객과 팬들을 능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를 바랍니다. 유하 감독 당신이 마치 내 가슴에다 칼을 꽂는 것 같은 느낌이 관람하는 내내 들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