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마피아를 다룬 작품들중에서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오늘날까지도 의심의 여지없이 최고의 수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부> 트릴로지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합니다. 각색이 비교적 대중적으로 이루어진 편이고, 탄탄하며 섬세한 연출 또한 부드럽게 진행이 되는 편이기 때문에 별 다른 거부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명작이였습니다.

이 작품은 런던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러시아 마피아를 다루고 있더군요. <대부> 만큼은 아니였지만 기대치를 충분히 부응하는 밀도 높은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성도 또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과는 별개로 100분의 상영 시간동안 대중들을 고려하는 모습은 단 한가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피아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중에서는 앞으로 두고 두고 회자될 수작중의 한편으로 남게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범죄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만큼은 숙지를 미리 하셔야 합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 흥행을 위한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으며, 관객들을 결코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으시다면, 상영관에서 이 대단한 수작을 만나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우리들이 말하는 '수작'이 때로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감독 본인이 대중들을 끌어안을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데,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번 작품은 대중들의 외면은 받을지언정 잊혀지지는 않을 겁니다.  

영화는 정적으로 진행이 되면서 기교를 자제한채, 러시아 마피아의 악랄한 일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조차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서슴치 않으며, 피가 낭자하는 끔찍하며 몸서리처지는 시퀀스가 여과없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배경이 되는 계절과 장소도 우중층한 색깔을 스크린에 가득 그려냄으로서 범죄와 연관된 어두운 이미지들을 일관적으로 유지합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이와같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계절과 배경은 엔딩씬에서 매우 중요한 암시를 보여주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계절과 배경이 바뀌는 것은, 따듯해보이는 어느 날 밝은 햇살을 내리쬐며 아기를 안고 있는 나오미 왓츠의 모습이 나올 때입니다. 밝은 햇살과 따듯한 계절처럼 그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죠.

하지만 화면이 전환되면서 비고 모텐슨의 마지막 모습이 나올 때는 음울하며 어두운 배경톤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KGB의 스파이지만 범죄 조직에 침투해 있는 그가 겪게 될 미래를 상징적으로 암시를 하는 것이겠죠. 그가 마피아로서 살아가든 KGB 요원으로 살아가든 절대로 나오미 왓츠처럼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삶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바로 미래에 펼쳐질 시간이기도 한 것이죠.

목욕탕에서 사투를 벌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마피아들이 즐겨입는 검정색 복장을 한 두명의 킬러는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를 죽이려 하지만, 그러한 소속 치레를 벗어놓은채 알몸뿐이였던 그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을 죽입니다. 킬러들은 조직을 위해서 사투를 벌였지만, 그는 단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 뿐이죠.

그토록 살고 싶었지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14살짜리 소녀의 가혹한 운명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아기를 더욱 살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피비린내 나는 일상들 뿐입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신을 훼손시키며 이유야 어찌되었든 살인을 하게 되는 그와, 소녀를 강간한 후 살인을 한 보스와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소녀의 일기장이 머리를 맴돌면서 고뇌 속에 빠져들게 하지만, 그가 앉아 있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선과 악의 테두리가 모호해져 가면서 범죄 조직의 탐욕스러운 권좌에 올라선 쾌감을 맛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지키고자 하지만 결국 그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게 되었음을 고뇌하는 모습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그 순간의 배경톤이 암시하듯 그는 아마도 배드 엔딩의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by 배트맨 | 2008/12/13 22:39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7) | 덧글(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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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제 3의 공간 at 2008/12/29 10:37

제목 : 이스턴 프라미스(2008) - ★★★★
역시나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작품 답게 강렬하면서도 잔잔하고, 또 소름끼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감독의 전작 '폭력의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폭력'에 대한 잔인하고 냉소적인 시선들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덕분에 이 영화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장담컨데 이 영화는 그런 불편을 견뎌 낼 만큼 가치가 있다. 이 영화가 특별할 수 있었던건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연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평범한 혹......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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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more

Commented at 2008/12/13 22: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3 23:16
안녕하세요. 먼저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링크해주신 사이트를 지금 가보았는데,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이트인 것으로 보이네요. 죄송하지만 제 글은(제 블로그의 모든 컨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를 준수하는 곳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에 귀사의 방침이 해당되신다면 다시 댓글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한번 방문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따듯한 주말 되시고요..
Commented by 아쉬타카 at 2008/12/13 23:06
참으로 마음이 먹먹해 지는 영화더군요.
크로넨버그의 엄청난 연출력과 비고를 비롯한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에 압도당하기도 했고, 하고자 하는 그 메시지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구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3 23:19
어 이상하네요. 좀 전에 리뷰를 올린 후 아쉬타카님의 블로그에 마실을 갔었는데, 이 작품의 리뷰가 없으시더라고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였나요. 관람하실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답글 적고 바로 또 마실을 가야겠네요. ^^*

엄청난 연출력과 연기력 그리고 메시지였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b
Commented by 혈류 at 2008/12/14 02:27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에서 말하신 것처럼....
극단적인 폭력은 견딜 수 있지만
ㅠ,ㅠ 정적인 진행은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번주 월~화 엠티를 가서 ㅋㅋㅋ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번달 생활비가 바닥이;;; ㄷㄷㄷ 알바를 해야 할 거 같아요... 함부로 지르는 짓은 이제 하지 말아야 할 듯...)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4 12:01
다소 정적으로 진행은 되지만 워낙 연출이 탄탄하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그러시지는 않으실 거예요.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수작이기 때문에, 범죄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작품 정말 수작이거든요. ^^*

만약 보실 생각이 있으시면 좀 서두르셔야 하실 것 같고요. 벌써 개봉한 주에 교차 상영으로 내려와 있거든요. 흥행을 고려한 요소들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북미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은 실패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혈류님께서는 인상적으로 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으실 것 같아요. ^_^
Commented by 타누키 at 2008/12/14 21:45
저희 동네에는 개봉하지 않았네요. 렛미인은 했었는데....흠흠..
괜찮은 것 같은데 내리기 전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5 13:26
그동안 제가 느낀 타누키님의 영화적인 취미와 성향 등을 보았을때, 이 작품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실 수 있을실 것 같습니다.

영화 커뮤니티에서도 개봉하는 상영관이 적어서 볼 수가 없다고 불평하는 글들이 올라오더군요. 이 작품도 수작이니 저는 시간을 내셔서 한번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o^
Commented by comodo at 2008/12/15 03:49
맞아요. 괜찮다 싶었던 영화들 추천해주면 꼭 도대체 이게 뭐야?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가 너무 많더라구요 쳇. 어떠려나 무지하게 궁금하네요. 꼭 봐야죠 큭큭!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5 17:09
이 작품 보시려면 좀 서두르셔야 하실 거예요. 개봉한 주에 이미 교차 상영으로 바뀌었거든요. 내용이 무척 무겁기 때문에 북미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흥행은 물 건너 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우 인상적으로 봤어요. 개인적으로는 comodo님께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
Commented by 비맞은달 at 2008/12/15 09:49
스포일 조심 이라고 외치면서
마음 한구석엔
영화관갈일 당분간없는데 뭘..
이런생각이.. ㅎㅎ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5 17:11
그래도 겨울 시즌인데 곧 상영관으로 마실을 가시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 영화를 안보셨으면 스포일러 부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저는 책임 못져요. -_-a
Commented by 비맞은달 at 2008/12/15 17:20
제 의지완 상관없이
이미 읽고있었습니다......
채채채채채채 책임져~ 예압~!
지누션이 생각나눼염 ㅎㅎ
저는 근데 희한하게도 결말듣고도 놀라는 부분은 놀랍니다.
(쏘우 결말을 듣고 영화관에서 봤는데
결말부분에서 깜놀... 머리가 부족한걸까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5 17:38
이미 읽으셨군요. 아 이런.. T.T 비맞은달님께서는 제가 책임질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으셨습니다. -_-a

그런데 결말과 스포일러를 이미 알고 보시는데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으시다는 겁니까? 그 필살기의 공개를 '얼마블연'의 이름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
Commented by 비맞은달 at 2008/12/15 17:50
뭐랄까... 결말을 들으면 아 이렇게 끝나는 구나 는 아는데
그 끝나는 타이밍을 잘 모른달까요;;;
어떤 경우는 결말모르고 봐도
뻔히 보이는 경우가 있어 싫은적도 꽤있었고;;
(제가 이 타이밍을 좀 이상하게 맞춥니다;;
제 친구는 그영화를 참 재밌게 봤다면서 결말 예측이 안됬다는
둥 그러면서 놀라운 영화 이러던데 저는 그 결말을
예상하고있었거든요;;)
뭐 여튼.. 그 타이밍이라는 것 떄문인듯 합니다 ㅎ
전 정말 쏘우의 결말이 그 타이밍에 나올줄 몰랐... ㅎ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5 18:39
저같은 경우에는 주말마다 TV에서 해주는 영화소개 프로그램도 안봅니다. '출발 스포일러 여행'이라고 프로그램명을 바꿔도 무방할 정도로 너무 많은 부분을 보여주더라고요. 타방송국과 경쟁이 심화되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다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래도 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보려면 모든 정보를 차단한채 상영관으로 향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타이밍 싸움에도 분명히 도움이 되실 겁니다. ^^*
Commented by THX1138 at 2008/12/15 11:41
저도 봤는데 좋더군요
마지막 장면 인상적이었어요 과연 그는 그곳에서 빠져나올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5 17:26
저도 이 영화 무척 좋았습니다. 기대치를 충분히 부응해주더군요. 개봉한 주에 교차 상영으로 도는 것을 보고, 지난 주말에 달려가서 보고 왔습니다. 왜 이런 수작은 극장가에서 이렇게 빨리 내리려고 하는 것인지.. T.T
Commented by 이끼 at 2008/12/15 13:39
저왔어요... ^^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15 17:31
앗! 이끼님의 반가운 댓글을 보니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_^
다시 돌아오셨군요. (브라보!) 이제 다시는 얼음집 비우시면 안되십니다. 저랑 같이 이곳에서 은퇴하셔야죠. T.T
Commented by 주드 at 2008/12/29 10:39
사우나 격투씬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단지 멋지게 보이려고 과장된 액션을 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살기위한 처절함과 절박함이 묻어나서 슬프기까지 하더군요. 올해 말미에 놓치면 안될 영화들이 참 많은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12/29 14:18
이 작품 정말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모두 예술이였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사우나의 격투씬도 정말 강렬하고 처절했고요. 영화 내내 배우들의 호연과, 재능 넘치는 연출이 커다란 만족감을 준 것 같아요.

이런 영화를 보면 뭐랄까요.. 상영관을 나설때 마음은 좀 무겁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봤다는 기쁨은 넘치더군요. ^^*
Commented by 흑흑 at 2009/08/28 13:34
영화관에서 못본것이 너무 슬픕니다. 이영화 지방에 개봉은 했는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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