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를 다룬 작품들중에서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오늘날까지도 의심의 여지없이 최고의 수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부> 트릴로지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합니다. 각색이 비교적 대중적으로 이루어진 편이고, 탄탄하며 섬세한 연출 또한 부드럽게 진행이 되는 편이기 때문에 별 다른 거부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명작이였습니다.이 작품은 런던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러시아 마피아를 다루고 있더군요. <대부> 만큼은 아니였지만 기대치를 충분히 부응하는 밀도 높은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성도 또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과는 별개로 100분의 상영 시간동안 대중들을 고려하는 모습은 단 한가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피아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중에서는 앞으로 두고 두고 회자될 수작중의 한편으로 남게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범죄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만큼은 숙지를 미리 하셔야 합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 흥행을 위한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으며, 관객들을 결코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으시다면, 상영관에서 이 대단한 수작을 만나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우리들이 말하는 '수작'이 때로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감독 본인이 대중들을 끌어안을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데,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번 작품은 대중들의 외면은 받을지언정 잊혀지지는 않을 겁니다.
영화는 정적으로 진행이 되면서 기교를 자제한채, 러시아 마피아의 악랄한 일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조차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서슴치 않으며, 피가 낭자하는 끔찍하며 몸서리처지는 시퀀스가 여과없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배경이 되는 계절과 장소도 우중층한 색깔을 스크린에 가득 그려냄으로서 범죄와 연관된 어두운 이미지들을 일관적으로 유지합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이와같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계절과 배경은 엔딩씬에서 매우 중요한 암시를 보여주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계절과 배경이 바뀌는 것은, 따듯해보이는 어느 날 밝은 햇살을 내리쬐며 아기를 안고 있는 나오미 왓츠의 모습이 나올 때입니다. 밝은 햇살과 따듯한 계절처럼 그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죠.
하지만 화면이 전환되면서 비고 모텐슨의 마지막 모습이 나올 때는 음울하며 어두운 배경톤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KGB의 스파이지만 범죄 조직에 침투해 있는 그가 겪게 될 미래를 상징적으로 암시를 하는 것이겠죠. 그가 마피아로서 살아가든 KGB 요원으로 살아가든 절대로 나오미 왓츠처럼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삶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바로 미래에 펼쳐질 시간이기도 한 것이죠.
목욕탕에서 사투를 벌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마피아들이 즐겨입는 검정색 복장을 한 두명의 킬러는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 그를 죽이려 하지만, 그러한 소속 치레를 벗어놓은채 알몸뿐이였던 그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을 죽입니다. 킬러들은 조직을 위해서 사투를 벌였지만, 그는 단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 뿐이죠.
그토록 살고 싶었지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14살짜리 소녀의 가혹한 운명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아기를 더욱 살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피비린내 나는 일상들 뿐입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신을 훼손시키며 이유야 어찌되었든 살인을 하게 되는 그와, 소녀를 강간한 후 살인을 한 보스와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소녀의 일기장이 머리를 맴돌면서 고뇌 속에 빠져들게 하지만, 그가 앉아 있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선과 악의 테두리가 모호해져 가면서 범죄 조직의 탐욕스러운 권좌에 올라선 쾌감을 맛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지키고자 하지만 결국 그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게 되었음을 고뇌하는 모습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그 순간의 배경톤이 암시하듯 그는 아마도 배드 엔딩의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