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장르를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즐겨보는 장르 또한 아닙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완성도보다는 자극적인 연출에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할리우드의 호러 영화들은장르적인 묘미와 오락성을 매우 고어한 표현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질 때도 많았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할리우드가 아닌 스웨덴에서 제작된 뱀파이어 소재의 영화입니다. 호러 장르의 작품치고는 이례적으로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1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요. 이와같은 이유들 때문에 할리우드의 호러 작품들과는 상당히 차별적인 요소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오랜만에 수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포 영화를 관람한 것 같습니다.
서두와 같은 이유 때문에 호러 장르를 즐기시지
않는 분들께도 추천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상영 시간 내내 단 한번도 관객들의 비명이 터져나오지는 않았었지만 이런 공포 영화라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연출을 맡은 토마스 알프레드슨이라는 스웨덴 감독의 재능이 정말 놀랍더군요. 할리우드의 리메이크를 반대한다는 그의 사견에 관객으로서 공감이 갈 정도로 이 작품은 오래도록 기억될만한 뱀파이어 영화입니다.
호러 장르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드라마를 114분 내내 삽입해놓고 있는데 이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정적으로 진행이 되지만 매우 탄탄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할리우드의 영화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자극적인 비주얼을 최대한 자제시킨 연출은, 이 호러 작품의 매력이 비주얼이 아닌 드라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114분을 지배할줄 알더군요. 자칫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는 구성과 진행이지만, 적재적소에 뱀파이어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시퀀스를 삽입해 놓음으로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객석이 술렁거린다던가 비명이 터져나오지는 않았지만, 특히 종반부의 시퀀스(1)는 대단히 창의적이며 임팩트가 컸습니다. 보면서 감탄사가 나오더군요.
여기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시길..

오프닝과 엔딩을 보면 동일하게 반복이 되는 씬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이 비춰지는 유리창에 손을 대보는 오스칼의 모습 너머로, 새로운 세계에서 오고 있는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엔딩에서 다시 또 볼 수 있는 동일한 모습 너머로는, 이엘리와 함께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오스칼이 있습니다.
오스칼처럼 이엘리와는 친구로 시작하게 되었을 마치 아버지와 같아보이던 그 남자처럼, 오스칼도 언젠가는 중년의 남성이 될테고 결국 그 남자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밟아나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정으로 시작된 인연이 사랑으로 발전한 후, 결국 비극으로 종결되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이죠. 이 작품이 한없이 서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우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만큼은 오스칼을 만나지 말아달라"며 그녀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질투를 모두 조용히 쏟아내는 그 남성 앞에서, 이엘리는 오스칼을 만날수록 거부할 수 없는 운명같은 사랑을 느꼈을 겁니다. "너와는 친구 안 할거야"라는 말을 처음 만난 오스칼에게 모질게 뱉어보지만, 이 뱀파이어 소녀의 운명은 오스칼이 그 남성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채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게 되지요.
이 소녀가 12살쯤이 아닌 14살쯤 되었을때, 오스칼은 반복되고 있는 이루어질 수 없는 다른 종과의 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오프닝씬과 엔딩씬의 반복되는 씬은 이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 이것이 운명이라면 인간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 모두에게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군요. 하지만 희극과 비극이 섞여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1) 수영장 시퀀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