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레르모 델 토로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억$를 넘긴 작품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1억$ 이상은 기본으로 찍고 갈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의 작품관 및 스타일을 고수하기 때문에 흥행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그의 연출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래서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좋습니다.
이번 속편은 8천5백만$의 제작비를 투입하여 전편보다 스케일을 더욱 키워놓았습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호평을 듣고 있고요. 다행이라면 전편보다는 많이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일텐데, 제작비를 생각한다면 여전히 북미의 성적표(1)는 신통치 않습니다.
비평가들도 호평을 하고, 상영관에서 관람을 한 관객들도 대체적으로 호평을 보내는데 왜 흥행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 시민들이 헬보이를 보며 손가락질을 하는데, 실제 미국인들에게도 헬보이는 슈퍼히어로로서 불편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본인의 역활과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스파이더맨이나, 필요악으로까지 규정되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배트맨 등과는 달리 헬보이는 미국인들이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 꿈꾸며 동경하는 - 슈퍼히어로가 아닌 것입니다.
캐릭터의 설정이 악마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캔맥주를 즐겨마시며 시가를 입에 물고 사는 슈퍼 히어로이기 때문에 외면을 받는 것이 아닐 겁니다. 저는 대중들의 외면이 길레르모 델 토로의 영화적인 재해석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 북미 박스오피스 - 결과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결국 대중적으로 환영받는 영화는 아닌 셈이 되었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선택한 관객들만큼은 열광할 수 있는 작품이 된 것 같네요. 길레르모 델 토로가 원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니였을까요. 관객인 내가 원한 것과 감독이 원한 것이 일치하는 영화가 바로 <헬보이>입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시길..

트롤 마켓에서 헬보이와 싸우던 괴물 윙크가 죽어갈때를 보면, 헬보이의 행동이 아주 가관입니다. 팽팽하게 당겨져서 점점 분쇄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쇠줄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탄성을 확인하더군요. 이빨 요정은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손으로 쥐어서 터뜨려 죽여버립니다. 이런 슈퍼 히어로 보신 분 계신가요?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물론 저는 길레르모 델 토로의 이런 연출 스타일이 끔찍하면서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원하는 정의로운 슈퍼 히어로는 행동과 사고의 폭이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상영관에서 열광을 하며 환호를 보낸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은 대중들의 니즈에 맞춰진 캐릭터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PG-13 등급이기는 했지만 미국의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이 영화를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는 119분 내내 매우 유쾌했습니다. 오프닝 씬은 마치 동화책의 삽화 이미지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살려놓은듯 하더군요. 정교하게 디자인 된 것이 아닌, 목각 인형같은 모습들에서 헬보이가 듣고 있는 동화책의 페이지를 그대로 넘기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골든 아미와 연계된 비주얼이 펼쳐지면서 오프닝 크레딧이 펼쳐지는데, 그 웅장함과 박진감에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큰 스크린과 더불어 상영관의 음향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였어요.
대중들의 니즈에 맞췄다면 흔하고 흔한 슈퍼 히어로가 나오는 119분짜리 깡통 팝콘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체성에 고뇌하는 모습도 어김없이 삽입되어 있고 융통성 없는 관료 조직도 조롱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오만해진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경고도 하고 있고요
. 이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터지게 하는 웃음과 더불어, 기괴한 배경 속에서 오락성을 잃지 않고 어우러지고 있으니 왜 길레르모 델 토로의 영화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관객들과 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괴물들을 좀 더 많이 등장시켰다고 말하던데, 저는 이런 변화보다는 이 영화에 삽입되어서 큰 웃음을 안겨주었던 Can't Smile Without You라는 곡이 흘러나오던 시퀀스가 좀 더 큰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의 작품 세계는 유지를 하되, 조금은 더 대중적으로 다가서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할리우드의 작품에 참여하게 되면서 큰 규모의 자본이 투입되고 있고, 평단과 관객들만의 호평만으로 언제까지 이러한 것들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테니까요. 변절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가 시도하는듯한 작은 변화가 긍정적으로 귀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꽤나 암울한 결말을 암시하는 대화가 나오던데, 2편에서 보여준 이러한 시도들이 3편에서는 어떻게 어우러져서 펼쳐질지 무척 기대되고 궁금합니다.
(1) 북미에서는 지난 7월 11일에 와이드 릴리즈 되었지만 현재까지 7천5백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 수익이 1억3천만$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흑자를 내겠지만, 북미 성적표는 확실히 그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액수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