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준익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보았을때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드라마 장르에서 엿볼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들이 삽입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여성 캐릭터가 중심 인물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였죠.
이준익 감독의 최근작들중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를 괜찮게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에 자칫 나타날 수도 있는 진부함과 통속적인 부분들을 떨쳐내고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작품중에서는 가장 많은 제작비인 70억원이 투입되었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인 완성도는 오히려 엉성해졌고, 오락성도 실종되었습니다. 팝콘 영화의 범주로 넣을 수는 없는 작품이므로 오락적인 체감 여부는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상영관을 나서면서 큰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능이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김지운 감독도 그렇고 이준익 감독까지 약속이나 한듯이, 왜 거대 자본만 투입이 되면 완성도가 오히려 떨어지고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정리를 먼저 해보고 싶습니다.
전작들을 통해서 재능을 보여준 이 두명의 감독이 만약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사에 스카웃 되어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러한 물음 자체가 필요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과 노하우가 분명히 그들에게는 있을테니까요.
한국 영화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고 반복되는 소재에 식상한 관객들이 등을 돌리고 있기도 하지만, 그동안 한국 영화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죠. 즉 한국의 제작사들 또한 감독만큼이나 이런 면에서는 그 어떤 노하우도 없다는 점이, 감독의 연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작사로서는 거대 자본이 잘 배치되며 활용될 수 있도록 시스템과 노하우를 제시해주어야 하는데 그 부분의 역활을 제대로 못하다보니 감독이 필요 이상의 부분까지, 아니 하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컨트롤을 해야 하는 환경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감독이 연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의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돌아오고, 제작사와 감독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더 많이 시도되고 시행착오를 겪을만큼 겪어야만, 우리도 잘 만들어진 대작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발전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출혈과 관객들의 인내심이 요구될 것 같습니다. 내일을 꿈꾸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할리우드의 오퍼를 받고 있는 감독들이 가장 망설이는 점이 편집권을 가질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그들의 시스템과 노하우에도 눈을 돌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작도 겸하는 감독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자본을 투입한만큼 비례하여 영화를 뽑아낼 수 있으려면, 이제는 정말 그들의 시스템과 노하우가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면서도 거듭 들었습니다
. 거대 자본이 투입될때마다 반비례하여 감독의 재능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정말 안됩니다. 관객의 인내심은 눈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내일까지만 유효할테니까요.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이준익 감독의 작품은 애정을 갖고 지켜볼 생각이지만, 다음 작품도 이처럼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계속 상영관에서 그의 작품을 볼 것인지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개연성이 실종되다 보니 캐릭터에 몰입할 수 없었고 전체적인 내러티브에 의문이 계속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부의 상당량을 수애의 베트남행에 동기를 부여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같은 의도가 잘 납득되지 않더군요.
여성의 사회적인, 가정적인 위치와 가치관이 요즘과는 많이 달랐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진부함만 느껴지는 전개였습니다. 또한 사지에서 미군에게 몸까지 허락하며 남편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한 이유는 도대체 뭐였을까요?
영화속에서 벌어지는 갈등 구조가 가정에서 - 시어머니와 남편 - 제 3의 인물인 정진영으로 옮겨지는 것도 이 작품의 엔딩과 관련해서는 산만하게 진행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수애를 중심으로 내러티브는 진행이 되지만, 정작 영화속에서 당시의 혼란스러웠을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은 정진영이기 때문이였습니다. 정진영이 맡은 캐릭터가 도구적인 역활로만 그치지는 않더군요.
베트남 전쟁을 묘사한 것에 대해 적어보자면, 첫번째 전투 시퀀스는 인상적이였습니다. 특히 참호를 따라서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동선은 이준익 감독의 다른 숨겨진 재능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서두에 적었듯이 드라마가 목적이였던 영화였기 때문에 전투씬의 비중이 큰 작품은 아니지만, 나머지 전투 시퀀스들은 오히려 삽입될때마다 극의 흐름을 끊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세련되게 적재적소에 삽입할 수도 있었을텐데 편집이 썩 매끄럽지는 않더군요.
70억원이나 들였고 태국 로케이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씬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촬영된듯한 배경으로 군인들이 나타나서 몰입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본문에 적은바와 같이 계획되어진 시간과 자본을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졌을 문제였다고 생각되네요.
정진영의 대사중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온 것이고, 군인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왔다"라는 대사가 나오던데 베트남 전쟁의 아픈 기억을 겉핥기로만 묘사한 것 같아서 이 부분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에게 정통성의 부재는 치명적인 약점이였고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미국에 더욱 기댈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9년 가까운 세월동안 꽃다운 나이의 수많은 군인들을 사지로 내몰게 됩니다
. 타의에 의해서 영문도 모른채 억울하게 흘린 피가 가득했을 그곳이였지만, 애시당초 엄태웅이 베트남으로 향하게 되는 설정을 보면 잊혀진 과거의 그늘과 아픔을 묘사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여성의 시선으로 묘사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지만, '전쟁의 아픔'이라는 표현은 이 영화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시면서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던가요? 정서적으로 어떤 점이 와닿으셨던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