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판타스틱 영화제 등에서 감독상, 관객상, 비평가상을 수상했다는 이 스페인 호러 영화가 주목을 많이 받았나 봅니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속편이 제작되고 있고, 할리우드에서는 리메이크(1)가 되어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며, 관객이 1인칭 시점으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캠코더를 마구 흔들어대는 이 작품이 <클로버필드>보다 앞서 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시간을 더 되돌려보면 10년 전에 대성공을 거뒀던 <블레어 윗치>가 있지만요.
<블레어 윗치>와 <클로버필드>는 기획, 마케팅, 연출 이 세가지 요소가 모두 잘 맞물리면서
오락성을 풍부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알.이.씨>는 기획에서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대 자본과 만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마케팅적인 요소는 논외로 하더라도, 연출에서 장르적인 묘미를 별로 느낄수가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리메이크 작품에 스탭이 모두 바뀐 것을 보더라도, 할리우드 또한 연출력보다는 기획력에 매력을 느꼈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알.이.씨>는 모자라는 구석이 많이 보이는 실망스러운 작품입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는 호러 영화 철학은 '어둠이 시각을 차단한다'입니다. 그리고 상영 시간 내내 이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연출에 있어서 매우 부담스러운 요소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영 시간 내내 매우 한정된 공간에서만 플롯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감독에게는 생동감을 주기 위해서 마구 흔들어야 했던 캠코더의 앵글보다 아마도 이 점이 더 부담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단 한채의 건물이라는 매우 협소한 설정만을 활용하려면, 탄탄한 시나리오와 함께 상당히 밀도 높은 완성도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우메 발라구에로'와 파코 플라자'의 공동 연출이라고 하는데 둘이 머리를 맞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지혜롭게 풀어나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이 작품의 상영 시간은 78분에 불과합니다. 메시지라던가 드라마 등의 요소가 좀처럼 삽입되지 않는 장르이기 때문에, 호러 영화들의 상영 시간은 대체적으로 일반 영화들에 비해서 짧은 편이지만 근래에 이렇게 짧은 영화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짧은 시간을 감독은 잘 활용해야 하는데, 플롯이 효과적으로 배치된 느낌을 받을수가 없습니다.
건물안의 등장 인물들이 모두 격리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장르적인 기대감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리포터에 의해서 시도되는 건물 주민들의 인터뷰는 이와같은 기대감과 긴장감을 끊어버리고 맙니다. 그 이후부터 산만한 구성을 수습하며 다시 관객들을 공포속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대부분의 컷들이 예상대로 흘러가면서 심장 박동을 끌어올리기에는 미진한 스릴러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때문에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과 그들에 쫓기는 모습 등에서 장르적인 오락성을 느끼기가 힘들더군요. 고어한 장면보다는 관객들을 구석으로 서서히 몰고가면서 조여오기 시작하는 스릴감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의외로 연출의 포인트가 엇나가 있었던 것에도 실망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라져버린 장르적인 쾌감을 다시 느끼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옥탑방에서 벌어지는 시퀀스였지만 그것으로 장르적인 묘미를 보상 받기에는 너무나 짧은 쾌감이였습니다.
끝으로 이 작품의 인터내셔널 런닝 타임이 국가별로 모두 다르게 나오네요. IMDb(2)를 보면 프랑스는 80분, 네덜란드는 85분, 한국은 78분으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화 사이트들도 78분으로 표기를 하고 있는데,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있어서 공공의 적과도 같은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또 한건 하셨나 봅니다.
(1) 리메이크 제목은 <Quarantine>이라고 하네요. 완전히 새로운 스탭과 배우들이 참여했습니다. 북미의 개봉일은 올해 10월 17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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