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관람하기 전에 사전 정보를 얻고 가는 것이 관객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원제는 <그라인드 하우스>인데 북미 시장에서는 작년 4월에 개봉을 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데쓰 프루프>(1)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연출한 <플래닛 테러>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서 한편의 영화로 상영이 되었다고 하네요. 영화 철학이 잘 맞는듯한 이 두명의 악동 감독들이 이와같은 기획을 한 이유는 바로 원제에 있습니다.
그라인드 하우스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두편의 B급 영화를 동시 상영하던 극장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의 B급 영화들과 극장에 대한 오마주인 것입니다.
포스터도 보면 마치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것처럼 표현해 놓았습니다. 감독의 연출 성향과 이러한 포스터를 보며, 저는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상영관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상영이 시작(2)되면서 '영화속 화질 변환, 중복 편집, 음향 사고 등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에 의해 의도된 연출이니 Enjoy It' 하라는 자막 안내가 나오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자막이 없었어도 금방 눈치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럴 정도로 이 작품의 오마주는 106분 내내 노골적이며 거침이 없습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전작인 <씬 시티>는 수작으로 기억됩니다. 그 작품에서는 일반적인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나가면서 천부적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플래닛 테러>에서는 이러한 한계선 따위는 애시당초 고려조차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만큼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려나간 것 같더군요. 짐작하건대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이 작품(3)을 만든 후 최고의 만족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댓가는 치뤄야 했습니다. 북미 시장에서 <그라인드 하우스>는 2,400만$를 겨우 넘기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와같은 기획 의도에 향수를 느낄법한 기성 세대와, 상영관의 소비 주체라고 할 수 있는 20대 관객들도 대부분 외면을 한 성적표이네요. 우리나라처럼 따로 한편씩 개봉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관람한 상영관을 보면 그렇지 않아도 객석이 썰렁했었는데 그나마 어느 관객 두분은 중간에 나가시더군요.
흔히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는 악동과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이같은 표현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번 작품에는 동의를 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대중들과의 소통을 고려하지 않는 천부적인 재능은 한정된 매니아들에게만 환영받을 뿐이니까요. 저 또한 이 작품을 보며 Enjoy It 하기에는 무척이나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부디 한편의 외도로 끝나는 것이기를 바래볼 뿐입니다. 참고로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 매우 짧은 보너스 컷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극장이 좋아요' 카테고리에서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시길..
일부러 삽입한 스크래치, 마치 상영관의 스피커가 고장이 나서 튀는듯한 음향, 무자비하게 가위질을 한듯한 거친 편집, 복고풍이 완연한 음악 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사지가 짤려나가는 씬과 피범벅이 상영 시간 내내 지속됩니다. 어떤 씬에서는 아예 카메라를 향해서 피를 쏟아 붓더군요. 고환을 모아놓은 투명한 자루, 강간하려고 할때 성기와 고환이 썩어가며 늘어지는 모습, 팔목이 부러지는 모습 등은 정말 보기에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그렇게 비장한 분위기에서 아동용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는 씬에서는 저도 웃음을 크게 터뜨렸지만, 감독이 의도한 코믹스러운 설정에서 마냥 웃을수만은 없었습니다. 헬리곱터의 프로펠러로 좀비들을 쓸어버리는 씬을 보면, 헬리곱터가 다가오자 갑자기 좀비들이 특유의 느릿한 몸짓으로 등을 돌려서 도망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 자각이 없는 좀비들이 죽을까봐 갑자기 도망을 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운 묘사인데 웃을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형제들이 그런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도, 전화 통화를 할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코믹스러운 설정인데 마찬가지로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웃을수가 없었나봅니다.
감독이 의도한 악랄한 재치와 대단한 재능이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펼쳐졌지만, 무엇보다도 정서적으로 공감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씬 시티 2>를 손꼽으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만, 이런 영화는 두번 다시 보고싶지 않네요.
(1) 작년 9월에 개봉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의 기획 의도와는 달리 따로 한편씩 개봉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지명도가 비교적 더 높아서 먼저 개봉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네요.
(2) 본편이 상영되기 전에 가짜 예고편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영화명이 <마셰티>던데 대니 트레조가 주연을 하더군요.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웃어가면서 꽤 유쾌했었습니다.
(3) 감독, 각본, 촬영, 편집, 음악을 모두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