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될때마다 후회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단관 시절의 극장을 담아놓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점이 참 후회되더군요. 때문에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극장들의 추억은 오직 제 마음속에서만 살아 숨 쉴 뿐입니다.
70mm 초대형 화면과 더불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던 대한 극장(1), THX 시절에 음향 충격을 처음으로 안겨줬었던 명보 극장,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음향 퀄리티를 들려준 그래서 황홀하기까지 했었던 씨넥스(2), 최초로 Dolby Digital EX 시스템을 상영했었던 중앙 극장, <플래툰>을 보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었던 국도 극장(3), 친구가 약속을 펑크내어서 하염없이 앉아 있어야 했던 단성사, 그밖에 피카디리 극장, 스카라 극장(4), 서울 극장, 아세아 극장 등은 모두 기억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단관 시절의 추억들입니다.
많은 극장들이 사라져버렸고 일부 극장들은 리빌딩을 했습니다. 기억속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오늘이지요. 때문에 '허리우드 클래식'을 찾을때는 지갑보다 카메라를 더 먼저 챙겼습니다. 옛 허리우드 극장 시절과는 이미 달라져버린 모습이였지만, 이 상영관 또한 미래를 알 수 없기에 - 짐작되기에 - 사진을 담아오기로 한 것이였죠. 늦었지만 이 상영관만이라도 꼭 기록해놓고 싶었습니다.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허리우드 클래식(구 허리우드 극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이 모습부터 보입니다. '어? 극장은 어디 있는거지?'라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옛날의 단관 상영관들도 이런 곳에 있지는 않았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은 잠시였고, 이렇게라도 존재하고 있어주는 것이 고맙더군요.

허리우드 클래식은 좌측에 있었습니다. 박스오피스와 입구가 보이더군요. 인터넷 예매를 하고 갔는데 무인 발권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박스오피스의 직원분에게 물어보니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더니 티켓을 바로 출력해주었습니다.
내심 옛날처럼 아주 얇고 작은 종이 위에 스탬프로 좌석 번호가 찍혀 있는 입장권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티켓은 볼수가 없습니다. 암표상(5)도 이제는 볼수가 없고요. 길게 줄지어 서있던 사람들의 모습들도 이제는 볼수가 없습니다. 몇시 상영하는 표가 아직 몇장 남아 있다고 소리치는 아저씨의 모습도 이제는 볼수가 없습니다. 저는 왜 그러한 풍경들이 박스오피스 앞에서 떠올랐던 것이였을까요?

안으로 들어가니 로비에 다수의 테이블과 의자가 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저런 테이블 서비스를 받으려면 요즘의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은 VIP 라운지에서만 가능한 일인데요. 뭐 나쁘지 않았습니다. 상영작인 <미션> 전단지도 준비되어 있더군요. 옛날에는 상영하는 영화의 팜플렛을 극장에서 판매했었지요. 그 팜플렛을 모으는 재미도 꽤 쏠쏠했었습니다. 어느날부터인가 팜플렛이 사라지고 위와 같은 전단지로 대체가 되었지만요.
허리우드 클래식에게 있어서 저 테이블과 영화 전단지는 오늘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였겠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서 좀 서글프게 느껴졌지만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습니다. 옛날 단관 상영관들은 대부분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죠. 저 계단으로 올라갈수는 있지만 2층의 상영관 출입문은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나중에 상영관으로 들어가서 올려다보니, 복층 자체를 모두 칸막이 공사해서 막아버렸더군요. 옛날 생각하면서 2층에서 볼까 했었습니다만.. 과거에 화려했었을 시절과 오늘날 처한 상황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었던 상징적인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옛 대한 극장에서 <벤허>를 상영할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람중에 학생 주임이 갑자기 화를 불같이 내면서 방방 뛰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알고보니 2층에서 관람을 하던 어느 학생이 음료수 캔을 1층으로 던져서 일반 성인 관객이 맞은 것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오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한 분위기였어요.
<벤허>처럼 상영 시간이 긴 작품들은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땡~하고 종소리 같은 것이 나면 매점과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었지요. 10분 정도를 쉬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왠만한 흥행 감독이 아니면 제작사에서 2시간 미만으로 편집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하지요. 상영 회전율이 높아야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으니까요.
(2)편에서 계속됩니다.
(1) 제 기억이 맞다면 이곳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저는 극장이란 곳을 경험했습니다. <마루치 아라치>를 봤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은 못드렸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리빌딩을 한 이후로는 화면비 때문에 두번 다시 찾지 않는 상영관이 되어버렸네요.
(2) 상영 시설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제는 상영관 용도로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상영관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이유들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는 있지만, 블로그에 더 이상 적기는 좀 그렇네요.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요.
(3) 얼음집에서 블로깅을 하기 전, 약 3년 정도 꾸며오던 사적인 웹 공간에 국도 극장과 명보 극장에 관한 글을 써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쌓아가던 컨텐츠중에서 이 글들을 백업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4)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는데 무척이나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철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았을때 왠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 날 카메라를 챙겨가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되네요.
(5)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예전에 인기 개봉작을 볼때는 암표상들도 성행했었습니다. 단관 상영관의 전성기 시절을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마 암표를 사신 경험이 한번 이상씩은 있으실겁니다. 당시의 암표상은 학생들에게도 표를 팔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고교 학생들에게까지 그래야 했을까 싶네요.
70mm 초대형 화면과 더불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던 대한 극장(1), THX 시절에 음향 충격을 처음으로 안겨줬었던 명보 극장,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음향 퀄리티를 들려준 그래서 황홀하기까지 했었던 씨넥스(2), 최초로 Dolby Digital EX 시스템을 상영했었던 중앙 극장, <플래툰>을 보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었던 국도 극장(3), 친구가 약속을 펑크내어서 하염없이 앉아 있어야 했던 단성사, 그밖에 피카디리 극장, 스카라 극장(4), 서울 극장, 아세아 극장 등은 모두 기억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단관 시절의 추억들입니다.
많은 극장들이 사라져버렸고 일부 극장들은 리빌딩을 했습니다. 기억속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오늘이지요. 때문에 '허리우드 클래식'을 찾을때는 지갑보다 카메라를 더 먼저 챙겼습니다. 옛 허리우드 극장 시절과는 이미 달라져버린 모습이였지만, 이 상영관 또한 미래를 알 수 없기에 - 짐작되기에 - 사진을 담아오기로 한 것이였죠. 늦었지만 이 상영관만이라도 꼭 기록해놓고 싶었습니다.



내심 옛날처럼 아주 얇고 작은 종이 위에 스탬프로 좌석 번호가 찍혀 있는 입장권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티켓은 볼수가 없습니다. 암표상(5)도 이제는 볼수가 없고요. 길게 줄지어 서있던 사람들의 모습들도 이제는 볼수가 없습니다. 몇시 상영하는 표가 아직 몇장 남아 있다고 소리치는 아저씨의 모습도 이제는 볼수가 없습니다. 저는 왜 그러한 풍경들이 박스오피스 앞에서 떠올랐던 것이였을까요?

안으로 들어가니 로비에 다수의 테이블과 의자가 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저런 테이블 서비스를 받으려면 요즘의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은 VIP 라운지에서만 가능한 일인데요. 뭐 나쁘지 않았습니다. 상영작인 <미션> 전단지도 준비되어 있더군요. 옛날에는 상영하는 영화의 팜플렛을 극장에서 판매했었지요. 그 팜플렛을 모으는 재미도 꽤 쏠쏠했었습니다. 어느날부터인가 팜플렛이 사라지고 위와 같은 전단지로 대체가 되었지만요.
허리우드 클래식에게 있어서 저 테이블과 영화 전단지는 오늘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였겠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서 좀 서글프게 느껴졌지만요.

옛 대한 극장에서 <벤허>를 상영할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람중에 학생 주임이 갑자기 화를 불같이 내면서 방방 뛰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알고보니 2층에서 관람을 하던 어느 학생이 음료수 캔을 1층으로 던져서 일반 성인 관객이 맞은 것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오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한 분위기였어요.
<벤허>처럼 상영 시간이 긴 작품들은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땡~하고 종소리 같은 것이 나면 매점과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었지요. 10분 정도를 쉬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왠만한 흥행 감독이 아니면 제작사에서 2시간 미만으로 편집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하지요. 상영 회전율이 높아야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으니까요.
(2)편에서 계속됩니다.
(1) 제 기억이 맞다면 이곳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저는 극장이란 곳을 경험했습니다. <마루치 아라치>를 봤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은 못드렸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리빌딩을 한 이후로는 화면비 때문에 두번 다시 찾지 않는 상영관이 되어버렸네요.
(2) 상영 시설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제는 상영관 용도로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상영관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이유들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는 있지만, 블로그에 더 이상 적기는 좀 그렇네요.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요.
(3) 얼음집에서 블로깅을 하기 전, 약 3년 정도 꾸며오던 사적인 웹 공간에 국도 극장과 명보 극장에 관한 글을 써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쌓아가던 컨텐츠중에서 이 글들을 백업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4)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는데 무척이나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철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았을때 왠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 날 카메라를 챙겨가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되네요.
(5)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예전에 인기 개봉작을 볼때는 암표상들도 성행했었습니다. 단관 상영관의 전성기 시절을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마 암표를 사신 경험이 한번 이상씩은 있으실겁니다. 당시의 암표상은 학생들에게도 표를 팔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고교 학생들에게까지 그래야 했을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