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했지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원작 만화는 2, 3초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이 만화를 재미있게 보았었던 때가 언제였었나 찾아보니, 1976년에 TBC에서 방영해주었을 때였더군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원작 만화는 불과 2, 3초 남짓이지만, 어린 시절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보았었나 봅니다.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엔딩곡 'Go Speed Racer Go'의 멜로디가 귀에 익숙했으니까요. 영상의 잔영보다는 주제곡의 잔영이 마음 속에 더 깊게 남아 있었나 봅니다. (1)
하지만 어린 시절의 즐거웠었던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고리를 완전히 끊어놓으면 영화는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워쇼스키 형제의 작품이지만 그들이 내놓은 가족 영화에는 성인이 즐길 수 있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 영화의 오락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때문에 133분이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글쎄요.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락성이라면 비주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레이싱 장면조차도 반복되는 앵글과 더불어 운전자의 스킬을 - 차량의 움직임을 - 확인하기 힘든 묘사 때문에, 레이싱 대결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시각적인 즐거움은 감소되었습니다. 현란함과 스피드함을 살리고자 한 시도 자체는 좋아 보였으나, 스피드 레이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레이서들의 대결에서 동적인 디테일을 볼 수가 없더군요. 레이싱 대회마다 배경은 달라졌지만, 앵글의 변화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게 되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가족 영화답게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두 가지 캐릭터가 맞붙을 때마다 기대했던 박진감이라던가 스릴감을 맛볼 수 없었던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현란한 화면만 가득했지, 기대한 두 가지 요소를 보기가 힘들더군요.
또한 이 작품은 드라마적인 요소도 점수를 주기가 힘듭니다. '출세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가족과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나름대로 살리고 있지만, 그와 연계되어야 하는 - 작은 - 감동 같은 것은 조금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종반부에 펼쳐지는 승자로서의 쾌감, 그리고 이어져야 할 감동 같은 것이 실종된 가족 영화가 과연 잘 만들어진 작품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는 것 같은데, 북미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이 보다 뚜렷한 편입니다.
Rotten Tomatoes에서는 불과 35퍼센트의 신선도만을 얻고 있으며, IMDb에서는 평균 6.6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스오피스 성적은 1,800만$를 조금 넘기고 있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참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속편 제작이 가능할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성적표인 것 같아서 워쇼스키의 팬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가족 영화라는 점만이 이 형제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면죄부일 것 같군요.
(1) 엔딩곡의 즐거움은 원작 만화를 본 사람들에게만 유효했을겁니다. 상영관 안에서 이 유효한 즐거움을 끝까지 만끽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