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스피드 레이서 - 디지털 (Speed Racer)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했지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원작 만화는 2, 3초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이 만화를 재미있게 보았었던 때가 언제였었나 찾아보니, 1976년에 TBC에서 방영해주었을 때였더군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원작 만화는 불과 2, 3초 남짓이지만, 어린 시절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보았었나 봅니다.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엔딩곡 'Go Speed Racer Go'의 멜로디가 귀에 익숙했으니까요. 영상의 잔영보다는 주제곡의 잔영이 마음 속에 더 깊게 남아 있었나 봅니다. (1)

하지만 어린 시절의 즐거웠었던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 고리를 완전히 끊어놓으면 영화는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워쇼스키 형제의 작품이지만 그들이 내놓은 가족 영화에는 성인이 즐길 수 있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 영화의 오락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때문에 133분이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글쎄요.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락성이라면 비주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레이싱 장면조차도 반복되는 앵글과 더불어 운전자의 스킬을 - 차량의 움직임을 - 확인하기 힘든 묘사 때문에, 레이싱 대결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시각적인 즐거움은 감소되었습니다. 현란함과 스피드함을 살리고자 한 시도 자체는 좋아 보였으나, 스피드 레이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레이서들의 대결에서 동적인 디테일을 볼 수가 없더군요. 레이싱 대회마다 배경은 달라졌지만, 앵글의 변화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게 되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가족 영화답게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두 가지 캐릭터가 맞붙을 때마다 기대했던 박진감이라던가 스릴감을 맛볼 수 없었던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현란한 화면만 가득했지, 기대한 두 가지 요소를 보기가 힘들더군요.

또한 이 작품은 드라마적인 요소도 점수를 주기가 힘듭니다. '출세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가족과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나름대로 살리고 있지만, 그와 연계되어야 하는 - 작은 - 감동 같은 것은 조금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종반부에 펼쳐지는 승자로서의 쾌감, 그리고 이어져야 할 감동 같은 것이 실종된 가족 영화가 과연 잘 만들어진 작품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는 것 같은데, 북미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이 보다 뚜렷한 편입니다.
Rotten Tomatoes에서는 불과 35퍼센트의 신선도만을 얻고 있으며, IMDb에서는 평균 6.6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스오피스 성적은 1,800만$를 조금 넘기고 있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참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속편 제작이 가능할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성적표인 것 같아서 워쇼스키의 팬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가족 영화라는 점만이 이 형제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면죄부일 것 같군요.

(1) 엔딩곡의 즐거움은 원작 만화를 본 사람들에게만 유효했을겁니다. 상영관 안에서 이 유효한 즐거움을 끝까지 만끽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지만요.
by 배트맨 | 2008/05/16 20:16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4) | 덧글(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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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oppa at 2008/05/16 21:15
드뎌 보셨군요^^
배트맨님의 리뷰 많이 기다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참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는데 많이 아쉽죠?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16 21:32
poppa님// 어젯밤에 보고 왔습니다. 원래는 며칠 전에 봤어야 했는데, PD수첩 등을 보느라고 놓치고 있었네요. 땅박이와 딴나라당 브라더스 때문에 영화도 제때 못본 셈입니다. -_-a

워쇼스키의 작품이라서 저도 기대를 했었는데 영화가 이렇게 나올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요. 계획대로 이 작품의 3부작을 마무리짓지 않고 만약 다른 영화로 넘어간다면, 워쇼스키가 부담을 좀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악평과 흥행 부진을 만회할 작품을 내놓아야 할테니까요.

재능 자체는 의심하지 않지만, 다음 작품은 그들의 명성에 어울리는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제 상영관을 나오는데 힘이 다 빠지더라고요. T.T
Commented by 혈류 at 2008/05/17 00:55
전... 좋았어요~ 그냥 색감 하나만으로...

생각없이 주욱 총천연색의 화면들이 지나가는데 이상하게 즐겁더

군요~ ㅎ 씬시티 이후로 참 만화다운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거 같

아요!
Commented by 아쉬타카 at 2008/05/17 01:32
확실히 제 아주 가까운 주변이나 블로거 분들도 대부분 배트맨님과 비슷한 평인 것 같아요 ^^;;

저는 의외로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저도 오타쿠인가봐요 윽....--;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17 02:07
혈류님// 처음에 영화가 시작될때 저도 색감을 보면서 "오 죽이는데!" 했었습니다. 문제는 그 감탄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이죠. -_-

<씬 시티>는 저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는데 <스피드 레이서>에서는 통 오락성을 찾을수가 없더라고요. 만화다운 영화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도 및 오락성이 떨어지는 영화인 것 같아서요.

솔직히 영화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T.T
뭐랄까요.. 5월의 블록버스터들 사이로 숨겨져있던 폭탄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 -a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17 02:14
아쉬타카님//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고 있고, 흥행에서도 참패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상영관으로 갔었습니다. 워쇼스키 작품이였기 때문에 꼭 보고 싶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보고 나오는 관객에 내가 속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

하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지루함까지 느끼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상영관을 나오면서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워쇼스키 당신들 이런 감독 아니였잖아요!" T.T
Commented by 스테판 at 2008/05/17 02:51
...가장 짜증났던 동생-침팬지 커플 등장씬을 들어내서 그나마 런닝타임을 줄였으면 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머 듭니다;; 정말 제대로 짜증나던 커플... 음..마치 "스타워즈" 프리퀄에서 자자 빙크스 같았다라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17 03:05
스테판님// 덧글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 저도 말씀하신 그 커플아닌 커플들이 나올때마다 정말 짜증이 다 나더군요. 상영관 안의 반응도 썰렁했습니다. 또 왜 그렇게 자주 나오던지요. -_-a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캐릭터들을 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동생&침팬지 때문에 재미가 없었던 것이 아니였으니까요. 워쇼스키 형제가 아무리 가족 영화라지만, 정말 이렇게 영화를 뽑아낼줄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이제 연출은 그들에게 취미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인지.. orz
Commented by comodo at 2008/05/17 03:33
이거 참 보고싶네요.......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는 항상 궁금증을 유발하곤 하니까요, 제가 돌아다니며 봤던 글 중에는 허지웅님이 거의 유일하게 좋다고 하시는 것 같고 상당수는 기대 이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궁금해서라도 보고 싶네용,
Commented by 라디오키즈 at 2008/05/17 12:03
저도 엔딩곡 굉장히 좋았는데...^^; 너무 비난이 쏟아지니 오히려 재미를 찾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17 14:23
comodo님// 보실 생각이 있으시면 서두르셔야 하실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일부 상영관에서는 교차 상영에 들어가는 것 같더군요. 다음주에는 세계적인 화제작 <인디아나 존스>가 개봉을 하기 때문에 극장가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저도 아무리 평이 안좋아도 보고싶은 영화는 가서 관람을 하는데요.
'이 영화는 정말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니까 comodo님은 또 다르게 보실지도 모르겠어요. 궁금증 꼭 푸시고 오세요. ^^*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17 14:34
라디오키즈님// 엔딩곡으로 즐거움을 느낀 것이 정말 오랜만이였던 것 같았습니다. CG가 많이 사용된 영화라서 엔딩 크레딧이 꽤 길었는데, 꼬마 아이 시절의 제가 상영관에 앉아있는듯한 느낌이였어요. ^^*

영화도 엔딩곡처럼 즐겁게 만들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흘러나오는 익숙한 멜로디만이 저를 위로해주더군요. 워쇼스키의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질줄은 몰랐네요. 5월의 블록버스터 화제작중 처음 만나게 되는 폭탄이였습니다. T.T
Commented by trinity at 2008/05/17 17:49
저도 나중에 읽을게요^^
무언가 폭풍전야의 주말같은데...
머리도 좀 식히고 재충전도 하며 보내야겠어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18 01:21
trinity님// 그러세요. ^^* 스포일러는 없으니까 미리 읽으셔도 괜찮으실 것 같고요. 주말중에 <나니아 연대기>를 보고오려고 했었는데, 다음 주중에 봐야할 것 같습니다. 주말동안 즐거운 시간 보내시면서 재충전 잘 하시고요. ^^;
Commented by 이끼 at 2008/05/19 15:35
그래픽말고는 정...................말 볼거 없었습니다. ㅋㅋ
아 한가지 더, 중간중간 스피드 동생의 몸개그가 웃겼지요.
그거 말고는 심히 지루했어요. ㅎㅎ
하지만 정지훈군이 찌질하게 나와서 재미있었습니다. ㅋㅋㅋ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철학적인 내용이 전혀 없어서 별로였어요.
다만 처제들과 함께 본 것 만으로 들거웠던건지도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5/20 01:48
이끼님// 제가 생각이 다른 곳에 가있어서, 정상적인 덧글을 지금 못적어드리고 있네요. 이끼님께 미안합니다.

항상 긍정적이시고 내일을 준비하시며 열심히 20대를 보내시는 이끼님을 알게되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끼님의 글속에 녹아있는 유머들도 즐거웠고요.

다시 돌아오셔서 무척 기뻤는데, 이번에는 제가 얼음집을 떠나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이끼님처럼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안녕'이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Commented by bada at 2008/07/28 15:26
본능적으로 현란한 시각효과에 눈 돌아가는 어린 남아와 강아지를 위한 영화...가족영화는 맞는데... 언니와 오빠. 엄마 아빠는 즐거울 것 같지 않다는게...아쉽네요...ㅋ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8/07/28 17:41
bada님의 댓글을 보면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정말 이 영화를 한줄로 명확하게 짚어내셨네요. ^^*

설마 워쇼스키 형제가 '언니와 오빠, 엄마, 아빠는 즐거울 것 같지 않은 가족영화'를 만들었을까 하며, 믿고 감상을 했는데 배신감마저 느껴지더군요. T.T

그래도 재능은 가득한 감독들이니까 차기작을 기대해봐야겠죠. 또 가족 영화를 찍는다면 팬으로서 말려야 할 것 같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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