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단만을 열광시키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상업적으로만 열광을 시키는 감독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가지도 제대로 얻지 못하지만요.
조 라이트 감독은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모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데뷔작인 <오만과 편견>, 그리고 <어톤먼트>를 보면서 그의 작품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그에게 푹 빠져버렸습니다.
[번외편] 2007년을 빛낸 영화들이라는 지난 글에서 '이안 감독의 감성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그의 이성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쏟아내게 한다'
라고 적은 바가 있었지요. 조 라이트 감독 또한 그러한 재능을 보여주는 연출자입니다.
이 영화의 드라마는 섬세함과 완성도에서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드라마로서 지향해야 하는 것들과, 완성시켜야 하는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보여주더군요. 거기에 더해지는 현란한 기교들과 영화적인 장치들은 보는 재미까지 증폭시켜줍니다. 특히 끊임없이 그러나 절묘하게 펼쳐지는 플래쉬백과 교차 편집을 보면서, 이제 조 라이트 감독이 영화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비주얼 색감도 매우 차별화를 시켰는데, 이는 그들의 시대적인 상황과 심리를 매우 잘 연계시켜주는 역활을 합니다. 마치 자연광만을 이용하는듯한 따듯하고 눈부신 햇살이 가득 반사되는 전반부와, 어두우며 채도를 뺀듯한 후반부의 색감은 예술가가 캔버스에 펼쳐놓는 그림과도 같습니다. 포스터가 보여주는 두 가지의 분위기 그대로입니다.
혹시 <오만과 편견>의 OST를 즐겨듣고 계신다면, 이 작품의 음악 또한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운 음악을 선보인 다리오 마리아넬리가 또 다시 음악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만큼은 스탭롤을 끝까지 감상하시면서 영화의 여운을 음악으로 달래보시는 것도 좋으실 것 같네요.
그 어느 장면에서도 감정의 과잉이 없는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객석에 앉아있던 나의 정서를 영화속으로 몰입시키며 끝내 요동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줍니다. 워킹타이틀 영화 중에서는 <빌리 엘리어트> 이후 최고의 수작을 만나고 온 것 같네요.
여기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시길..
욕조에 누운 채 지나가는 군용기를 바라보면서 휘파람을 부는 모습은, 차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는 순박하지만 꿈이 있는 로비(제임스 맥어보이)의 캐릭터와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더군요. 로비가 어린 브라이오니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건네는 순간을 보면 울타리를 사이로 마주보게 되는데, 결국 그 울타리가 그들 인생의 끝까지 지속이 된 셈이지요. 이러한 여러가지 영화적인 장치들과 묘사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였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애써 들키지 않으려는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 물에 젖은 관능적인 모습의 그녀를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로비.. 그러했기 때문에 키스씬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더욱 격정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세실리아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물속에 잠긴 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분수대에 뛰어들었던 그 날의 아름다웠었던 순간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후부터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변해버린 때가 아닌, 사랑을 서로 숨긴 채 바라만 보던 시절을요. 전쟁도 없었고, 햇살은 따스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머물고 있었던 여름의 어느 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