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 작품을 '워킹타이틀'에서 제작한 것이 흥미로웠다. 할리우드가 전세계의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는 제국임이 명백한 현실속에서, 영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는 제작사가 바로 워킹타이틀이 아니였던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당시 세계 최강국이였었던 스페인을 향해 일갈을 하며 무적함대를 침몰시키고 골든 에이지를 시작한 것처럼, 어쩌면 워킹타이틀도 언젠가는 할리우드를 향해 일갈을 하고 영국 영화의 골든 에이지를 시작하고 싶은 소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의 로맨틱 코미디와 <오만과 편견>, <빌리 엘리어트>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매우 훌륭하다.
인도인 감독인 세카르 카푸르는 이 영화속에 여러가지 요소들을 담아내며 보여주려 한다.
여왕으로서의 삶과 포기해야만 했던 여성으로서의 삶,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배신과 피비린내 나는 암투, 구교와 신교의 반목 및 충돌을 114분동안 모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들 사이에서 비교적 균형을 잃지않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전개를 하기위해서 선택한 캐릭터의 표현은 관객을 조금은 혼란스럽게 만들며 범작으로 그치게 만드는 느낌을 준다. 바로 프란시스 드레이크를 모델로 했다는 클라이브 오웬의 캐릭터가 그러하다. 물론 이것은 그의 훌륭한 연기력과는 무관한 관객이 바라본 완성도에서의 관점이다.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안보신 분이라면 읽지 마시길..
극중에서 클라이브 오웬은 무척이나 멋진 남자 캐릭터이다.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탐험가라서가 아니라, 또한 스페인 함대와의 격전에서 용감하게 싸운 모습때문이 아니라 -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기사 작위를 받고 스페인 함대와의 격전을 훌륭하게 지휘했다고 한다 - 캐릭터가 영화내내 보여주는 한결같은 신의와 인성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때문이다.
이러한 캐릭터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닌, 베스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개연성이 매우 부족하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를 본다면 말이다. 그는 나중에 엘리자베스 여왕과 진심이 가득 담긴 눈과 마음으로 키스를 하고 여왕을 어루만져주는 정신적인 버팀목이다. 그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동시에 사랑받은 복받은 - 또는 파렴치한 - 남자였던가!
영화를 위해서 캐릭터를 재해석하거나 재가공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캐릭터의 정체성 자체가 모호해지는 것은 관객들에게 혼란과 실망을 안겨줄 뿐이다. 스토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캐릭터이지만, 그 캐릭터가 보여주는 일부 시퀀스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스페인의 무적함대와의 격돌에서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여주는 용기와 기개가 클라이브 오웬의 캐릭터에 상당부분 희석되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이 영화의 부제가 '엘리자베스 여왕과 라일리경'은 아니지 않았던가!
케이트 블란쳇을 가리키며 그녀가 아니면 이 세상 어느 여배우가 이 역활을 맡을 수 있겠는가?라고 감독이 말을 했다는데 영화를 보면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이 영화의 전작인 1998년작 <엘리자베스>는 보지 못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케이트 블란쳇은 이제 연기력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여배우로 성장을 했다. 10년이 지난 오늘날 이 둘이 다시 만났지만 감독은 이 여배우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작품을 보면 아카데미 트로피를 움켜쥔 배우가 두명이나 등장하며, 클라이브 오웬도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배우이다. 워킹타이틀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엘리자베스 여왕같은 배우들이 아니라, 그러한 감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끝으로 메리 스튜어트를 연기하는 사만다 모튼이라는 여배우의 연기력 또한 발군이였다. 이번 영국 아카데미의 여우조연상은 이 여배우가 움켜쥘 수 있기를 바래본다. 출연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대단한 임팩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