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인 연출로 157분을 그려나가지만, 엔딩롤이 올라갈때 느껴지던 정서는 마치 격랑과도 같이 나를 흔들어놓았다. 엔딩씬 무렵부터 밀려오기 시작한 정서적인 여운은 스탭롤이 다 끝난 후에도 쉽게 좌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안 감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제 그는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관객들과 의도한 그대로 소통하는 것 같다. 그의 감성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그의 이성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쏟아내게 한다. 나 또한 그의 영화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마케팅에 이용되고 있는 무삭제 배드씬 20분이 정작 중국에서는 삭제된채로 상영이 되었다고 하던데, 이 작품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며 해석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눈을 크게 뜨고 섹스씬을 지켜보기 바란다.
영화의 완성도 및 메시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OST 또한 매우 아름답다. 스탭롤이 올라갈때 첫번째로 나오는 곡이기도 한 Wong Chia Chi's Theme는 음악만으로도 이 영화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왕리홍의 열정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그녀이지만, 기구한 운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냉정해보이는 아니 냉혈한과도 같은 양조위를 만나게 한다. 왕리홍은 마치 불과 같고 아마추어이지만, 양조위는 얼음과 같고 철두철미한 프로페셔널이다.
하지만 섹스씬만큼은 매우 격정적으로 펼쳐진다.
사랑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는 양조위, 공적인 자리에서는 - 가정에서조차 - 얼음과도 같은 냉정함을 보여주지만 어쩌면 그도 떨쳐낼 수 없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였을까?
일본군 장교들이 패망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저렇게 웃고 떠들며 보란듯이 으시대고 다닌다고 냉소를 하는 그였지만, 그 자신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얼음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직 탕웨이만이 양조위가 끝내 펼쳐보일 수 없었던 잃어버린 열정을 끄집어낸다. 침대 위에서, 그리고 사랑 앞에서..
인력거 위에서 바람개비를 바라보는 탕웨이는 스스로가 바람이 오면 오는대로 맞아야 하는, 그리고 그 바람에 의해서 뱅글뱅글 돌아가야만 하는 바람개비와 같은 운명이자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 이러한 운명을 -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독약을 먹지 않았던 것과, 처형장 앞에서의 담담하며 의연한 모습은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처형을 지시한 후 부하가 다시 건네주는 다이아몬드 반지조차 부정해버리는 양조위는, 집으로 돌아온 후 눈치를 챈듯한 부인 앞에서조차 사적인 감정과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사랑을 보내야만 했던 그에게 남은 것은..
다시 인생을 억눌러오는 두려움과 그것을 감추기 위한 냉정함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