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얼음집 안에 서툴게 집어넣은 영화들과 상영관들. (2006.10.23~)
by 배트맨

색, 계 (Lust, Caution)

정적인 연출로 157분을 그려나가지만, 엔딩롤이 올라갈때 느껴지던 정서는 마치 격랑과도 같이 나를 흔들어놓았다. 엔딩씬 무렵부터 밀려오기 시작한 정서적인 여운은 스탭롤이 다 끝난 후에도 쉽게 좌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안 감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제 그는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관객들과 의도한 그대로 소통하는 것 같다. 그의 감성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그의 이성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쏟아내게 한다. 나 또한 그의 영화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마케팅에 이용되고 있는 무삭제 배드씬 20분이 정작 중국에서는 삭제된채로 상영이 되었다고 하던데, 이 작품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며 해석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눈을 크게 뜨고 섹스씬을 지켜보기 바란다.
영화의 완성도 및 메시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OST 또한 매우 아름답다. 스탭롤이 올라갈때 첫번째로 나오는 곡이기도 한 Wong Chia Chi's Theme는 음악만으로도 이 영화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왕리홍의 열정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그녀이지만, 기구한 운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냉정해보이는 아니 냉혈한과도 같은 양조위를 만나게 한다. 왕리홍은 마치 불과 같고 아마추어이지만, 양조위는 얼음과 같고 철두철미한 프로페셔널이다.

하지만 섹스씬만큼은 매우 격정적으로 펼쳐진다.
사랑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는 양조위, 공적인 자리에서는 - 가정에서조차 - 얼음과도 같은 냉정함을 보여주지만 어쩌면 그도 떨쳐낼 수 없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였을까?

일본군 장교들이 패망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저렇게 웃고 떠들며 보란듯이 으시대고 다닌다고 냉소를 하는 그였지만, 그 자신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얼음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직 탕웨이만이 양조위가 끝내 펼쳐보일 수 없었던 잃어버린 열정을 끄집어낸다. 침대 위에서, 그리고 사랑 앞에서..

인력거 위에서 바람개비를 바라보는 탕웨이는 스스로가 바람이 오면 오는대로 맞아야 하는, 그리고 그 바람에 의해서 뱅글뱅글 돌아가야만 하는 바람개비와 같은 운명이자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 이러한 운명을 -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독약을 먹지 않았던 것과, 처형장 앞에서의 담담하며 의연한 모습은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처형을 지시한 후 부하가 다시 건네주는 다이아몬드 반지조차 부정해버리는 양조위는, 집으로 돌아온 후 눈치를 챈듯한 부인 앞에서조차 사적인 감정과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사랑을 보내야만 했던 그에게 남은 것은..
다시 인생을 억눌러오는 두려움과 그것을 감추기 위한 냉정함뿐..

by 배트맨 | 2007/11/11 02:13 | 영화를 보고온 후 | 트랙백(3)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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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Different Ta.. at 2007/11/11 23:16

제목 : 색, 계 (色, 戒, 2007) - 그녀의 마음을 ..
★★★★☆ 와 가장 유사한 영화로 시리즈를 꼽고 싶습니다. 외세에 저항하는 반군들의 이야기이고 특히 홍콩 대학 출신의 젊은 스파이들이 목표물로 삼고 있는 매국노 이(양조위)가 다스 베이더의 포스를 뿜어대고 있기 때문이죠.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스 베이더의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에서 부자 관계로 전환되는 부분과(정확히는 부자 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지만요) 에서 왕 치아즈(탕웨이)와 이의 관계가 단순한 남녀 관계.....more

Tracked from 靑春 at 2007/11/17 21:58

제목 : 색,계(2007) - ★★★★
(스포일러 있을지도?) 난 이 영화가 결국은 '사랑' 이야기라 생각한다.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1942년의 상해 라는 배경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를 죽이겠다는 애국심도 결국은 그녀와 그의 사랑이야기를 더 안타깝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에겐 왜 그리 막부인에게 빠져버린 '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한없이 부드럽게 들리고, 결정적인 순간을 망쳐버린 막부인의 한마디가 더 절절하게 다가오던지. 솔직히 나에게 이 영화 속......more

Tracked from bada's style at 2008/07/29 23:31

제목 : 색,계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미국, 중국, 홍콩, 대만 | 드라마 | 157 분 | 개봉 2007.11.08 주연 양조위 : 이 역 탕웨이 탕유 : 왕치아즈/막 부인 역 조안 첸 Joan Chen : 이 부인 역 왕리홍 왕력굉 : 광위민 역 감독 : 이안제64회 베니스영화제 (2007) 촬영상 로드리고 프리에토 Winner 제64회 베니스영화제 (2007) 황금사자상 이안 Winner ----------------......more

Commented by 혈류 at 2007/11/11 03:18
황급하게 스포일러에 스크롤을 내립니다.
영화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제가 19세 미만 영화를 이제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놀랍고... 아직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답니다. 뭔가 찔리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Commented by 배트맨 at 2007/11/11 03:44
혈류님// 늦게까지 안주무시고 계시네요? ^^*
이번주에 관람한 영화는 2편 모두 마음에 들더군요.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스포일러 부분은 영화를 관람하신 후 읽으시고요..

덧글과 관련하여 제가 느끼는 우리나라의 문제라면, 성인이 영화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없애는 제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심의위원회 같은 사람들이 왜 성인들이 내려야 할 판단까지 본인들 몇 명이서 하는지 이해를 정말 못하겠습니다. 심의위원회에서 보았을때 우리나라 성인 관객들은 성인들로 보이지를 않는가봅니다..

다행히도 <색, 계>는 가위질없이 공개되고 있지만요.
'다행'이라는 표현을 써야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참 씁쓸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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