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대체적으로 일치합니다. 그가 재능을 가진 젊은 감독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야망을 가지고 있는듯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야망을 숨김없이 모두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 대중들에게 전통적으로 슈퍼 히어로물이 사랑을 많이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 히트작들과는 사뭇 다른, 아니 완전히 다른 형태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꿈꾸고 있었던듯 싶습니다. <다크 나이트>는 그가 갖고 있던 이러한 야망의 완벽한 발로이자 귀결입니다.
'사실성'과 '드라마'. 이 두가지 요소의 완벽한 공존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제 팀 버튼처럼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될 수 있는 독창적인 배트맨을 완성해냈습니다. 아니 이 작품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입니다.
더불어 슈퍼 히어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저는 비슷한 시도를 했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스파이더 맨> 1편과 2편이 그것인데, 샘 레이미 감독의 이 두 작품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고 충격적이였습니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드라마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샘 레이미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샘 레이미도, 그 어떤 감독들도 슈퍼 히어로물에서 그려내지 못한 요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실성'입니다. 이 천부적인 젊은 감독은 슈퍼 히어로물에서 만연하고 있던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모두 지워버렸고, 대신 사실적인 배경과 묘사를 삽입함으로서 자신의 영화가 차별화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공간과 시간, 그리고 캐릭터들은 그 어떠한 과장없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며 우리들과 마치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때문에 영화속의 배경이 홍콩으로 잠시 이동을 해도 관객으로서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고담시라는 작위적인 설정 안에 영화의 틀이 갇혀 있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모두 지워지면서 관객들이 살아가는 시공간과 동일화되었고, 때문에 배트맨에 얽혀있는 시공간들이 마치 서울이나 부산처럼 실제적으로 지도 위에 존재하는 시공간으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조커의 사악함과 잔인함이 몸서리처질 정도로 피부에 와닿게 됩니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해괴한 말투, 행동 모두가 우리들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슈퍼 히어로물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가 넘치는 악의 캐릭터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관객들에게는 가장 공포스러운 체감을 전달해주는 극악스러운 캐릭터가 됩니다.
또한 위와 같은 연출로 인하여 배트맨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 감정 이입이 쉽게 이루어 집니다. 고담시와 관객들이 거주하는 도시 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진 상태에서, 드라마에 한없이 빠져들게 되고 내러티브의 전개에 치를 떨게 됩니다. 호쾌한 액션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안겨주는 판타지적인 매력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영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152분의 상영 시간은 이러한 부분들에 집중되며 이 작품이 블럭버스터 팝콘 영화의 범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오락적인 요소들을 포기하며 감독의 철학과 야망을 가득 칠해내는, 즉 관객들을 배신하는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시작부터 입이 벌어지게 하는 오프닝 씬을 비롯하여 여러 액션 시퀀스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 냄으로서,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추구할때 자칫 생길수도 있는 지루함을 교묘히 사라지게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152분을 완벽하게 지배하더군요. 이 영화를 보면서 그가 가진 재능 뿐만이 아니라, 연출에 혼을 불어 넣는듯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이 작품은 종반부에 이르게 되면서 메시지를 강력하게 표출하며 현대인들을 조롱합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대부분이 갖고 있을, 이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지니고 있을 이기적인 내면과 이중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투페이스의 비중이 비교적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작품은 투페이스를 위한 영화다'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메시지입니다.
부패로 점철된 고담시의 새로운 구원자로 떠오른 하비 덴트 검사(투페이스)를 후원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이같은 공적인 목적에는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욕정만을 채우려고 했던 어느 커플조차도 배트맨을 향해서 '혼자서만 살려고 비밀 통로로 빠져나간다'라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서로 폭파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설쳐대지만 정작 가장 의로운 일을 해내는 사람은, 조커만큼이나 무시무시해 보이던 어느 범죄자였습니다.
하비 덴트를 통하여 이기적이며 이중적인 모습을 가장 극단적으로 투영하고 있는 동시에, 주변 인물들과 설정들도 이를 일관적으로 그려가고 있습니다. 즉 일반적인 대중들도 조커나 투페이스 만큼이나 두개의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결국 서로를 믿는 배 위의 시민들이 보여준 결과들은 이 세상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배트맨만이, 아니 하비 덴트 검사가 고담시의 구원자이자 희망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시민들의 믿음과 정의와 도덕성이 이 세상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배트맨조차 힘겨워 하던 조커같은 악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하며 진정한 파워라는 이야기입니다.
비틀거리며 도망을 치는 배트맨의 모습을 보며, 고든 경감의 아들이 '배트맨은 잘못한게 없잖아요'라고 외칩니다. 마찬가지로 두개의 얼굴속에서 항상 고뇌하며 살아가는 배트맨이 왜 진정한 영웅인지 대비가 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내적 파워들이 이 세상에 가득해질때, 배트맨은 비로서 가면을 벗고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겠죠.
영화속에서 그 날은 결코 오지 않겠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바람처럼 저 또한 현실에서의 그 날은 반드시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더군다나 우리들에게는 배트맨같은 슈퍼 히어로도 존재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